문화칼럼

“어떤 차이가?”…속성으로 얻은 것과 숙성을 거친 것

속성은 시간을 줄이는 기술입니다. 반면 숙성(熟成)은 시간을 채우는 과정입니다. 속성에는 숙성이 없고, 숙성이 없는 곳에는 성숙도 없습니다.
와인은 어둡고 서늘한 곳에 가만히 두어야 숙성됩니다. 바깥에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병 속에서는 깊은 맛과 향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 숙성을 망치는 것이 있습니다. 조급함입니다. 견디지 못하고 병을 열어버리는 순간 숙성은 끝나고 맙니다.-본문에서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사무엘하 5:4)

초등학생이 미적분을 풀고 중학생이 대학 과정을 선행하는 시대입니다. 빨리 앞서 나가는 것이 능력이고 남보다 먼저 도달하는 것이 성공이라 믿습니다. 무엇이든 앞당기고 단축하고 빠르게 처리하려는 ‘속성(速成)’이 미덕이 된 세상입니다.

속성은 시간을 줄이는 기술입니다. 반면 숙성(熟成)은 시간을 채우는 과정입니다. 속성에는 숙성이 없고, 숙성이 없는 곳에는 성숙도 없습니다.

와인은 어둡고 서늘한 곳에 가만히 두어야 숙성됩니다. 바깥에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병 속에서는 깊은 맛과 향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 숙성을 망치는 것이 있습니다. 조급함입니다. 견디지 못하고 병을 열어버리는 순간 숙성은 끝나고 맙니다.

사울에게도 숙성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길갈에서 사무엘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흩어지는 것이 보이고 블레셋의 위협이 다가오자 사울은 조급함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기어이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려버립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병을 열어버린 것입니다. 속성의 욕망이 결국 그의 왕위를 앗아갔습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후 약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광야에서 보냅니다. 도망, 은신, 블레셋 체류.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이력서에는 단 한 줄도 적을 것이 없는 공백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둡고 서늘한 세월이었습니다.

다윗에게도 광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있었습니다. 엔게디 동굴에서, 하길라 산에서 사울을 죽이기만 하면 끔찍한 광야 생활을 끝내고 단숨에 왕좌로 직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결코 스스로 병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된 나이를 보면 놀랍습니다. 겨우 서른입니다. 물론 그 시대의 서른과 오늘의 서른은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많은 나이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15년이나 광야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허비한 줄 알았는데 서른에 왕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오히려 누구보다 빨랐습니다. 속성반에 다닌 적 없는 사람이 결국 가장 빠른 속도로 왕이 된 것입니다. 숙성이 곧 최고의 속성이었습니다.

속성으로 얻은 것은 빨리 상합니다. 숙성을 거친 것은 오래갑니다. 그의 시편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의 기도와 노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어두운 광야에서 채워진 깊이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려고 다윗의 인생에 숙성의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성숙이 최고의 이력입니다. 신앙에는 속성반이 없습니다. 숙성반만 있습니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