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웃고 있다.
의과대학생이 의사가 되기 위해 배우는 과목에는 해부학·생리학·병리학과 같은 기초의학과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임상의학이 있다. 그 가운데 해부학은 Andreas Vesalius가 1543년 『De humani corporis fabrica(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를 저술한 이후 의학의 가장 중요한 기초 학문이 되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는 오래전부터 시신을 훼손하는 일을 금기시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1909년 황현의 『매천야록』에 “대한의원에서 교수형을 당한 사람의 시신을 해부하여 의대생들의 견습 자료로 삼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오늘날 3차원 영상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였다 하더라도 의학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바로 해부학 실습이다. 그래서 해부학 교수들은 “Nothing can replace dissection”이라고 말한다.
해부학 실습 첫 시간에 학생들은 의학적으로 처음 ‘죽은 사람’을 만난다. 비록 시신이지만, 그를 통해 우리 몸의 구조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생전에 교육과 연구를 위해 자신의 몸을 기증하겠다는 숭고한 뜻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학생들은 단순히 몸을 배우는 것을 넘어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 스스로 다짐해 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감정을 드러낼 수도 없는 굳어진 몸을 보며 우리는 오히려 살아 있는 생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되기도 한다.
요즈음에는 사후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미리 서약하는 분들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 특히 유명인이나 공인이 기증을 하면 그 영향으로 기증자가 늘어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시신은 교육과 연구에 사용된다. 해마다 해부학 실습이 끝나면 화장을 모시어 의과대학장의 주관 아래 교수와 학생들이 그해 기증자들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추모제를 지낸다. 유골은 가족에게 인계되기도 하고, 해부학교실의 납골당에 안치되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면 시신을 기증하신 분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유명인의 이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꼭 20년 전,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코미디언 한 분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생전에 밝힌 뜻에 따라 시신을 기증하였다. 그는 바로 김형곤씨였다. 유명 인사였기에 그의 시신은 학생들의 해부 실습에는 사용되지 않았고 해부학 연구에만 사용되었다.
당시 나는 응용해부연구소 소장과 함께 눈 주위 구조, 특히 가쪽 눈구석 부위의 인대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남자 11구, 여자 11구의 시신을 해부하여 눈구석 인대의 장력을 측정하는 연구였다. 대부분 고령이거나 오랫동안 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분들이었다. 그런데 젊고 건장한 얼굴을 지닌 그 유명인의 시신에서 피부를 벗기고 눈구석 구조가 드러난 모습을 촬영하여 논문에 실었다.
보통 해부실에서 시신을 대할 때는 엄숙한 마음이 들고, 혼자 해부할 때는 약간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마주할 때면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칠판을 놓고 강의하듯 이야기를 풀어가던 스탠딩 코미디가 떠올랐다. TV에서 ‘회장님’ 역할로 능청스럽게 웃음을 주던 모습도 생각났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해부실에 남아 있어도 우리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며칠 전 그의 20주기 기사를 보았다. 덕분에 그때 완성되어 국제학술지에 실리고 여러 번 인용된 논문을 다시 찾아보았다. 바로 이것이다. (Anatomic Study of the Lateral Palpebral Raphe and Lateral Palpebral Ligament. Annals of Plastic Surgery. 2009;62:232–236)
논문에 실린 눈 주위 해부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생전에 환하게 웃던 그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지금도 웃고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