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단체전에서 15살 러시아 소녀 발리에바가 남녀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기술로 평가받던 3회전 반 점프, 즉 트리플 엑셀을 넘어 4회전 점프를 너무 쉽게 해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트리플 엑셀은 여자 선수 가운데 일본의 미도리 이토가 최초로 시도했고, 이후 미국의 토냐 하딩과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성공했다. 아사다 마오는 밴쿠버 올림픽에서 트리플 엑셀을 성공했지만 김연아에게 금메달을 내주었다.
그러나 발리에바가 혈관 확장제와 성장 억제제를 포함한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러시아 팀의 단체전 금메달은 취소되었다. 4회전 점프는 체격이 커지면 시도가 어려워 일부러 여자 선수들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논란도 제기되었다. 이후 체격이 커진 발리에바는 4회전 점프를 하지 못했다.
베이징에서 발리에바의 코치 트루소바(원문 표기 ‘트루베니체’)의 또 다른 제자인 17살 트루소바는 여자 프리 프로그램에서 5번의 4회전 점프를 성공했지만, 금메달은 같은 코치의 또 다른 제자인 안나 셰르바코바에게 돌아갔다. 트루소바는 금메달에 실패한 후 생방송 인터뷰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등 논란을 낳았다.
김연아가 트리플 엑셀 없이도 밴쿠버에서 우승했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트리플 엑셀을 세 번이나 성공한 아사다 마오도 김연아에게 뒤졌다. 실제로 발리에바와 트루소바는 4회전 점프는 쉽게 해냈지만 3회전 반 점프인 트리플 엑셀은 성공하지 못했다.
밀라노와 코르티나 두 도시에서 열리는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코치 트루소바는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페트로시안의 코치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페트로시안은 2개의 4회전 점프를 프로그램에 넣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4회전 점프 열풍은 이번 올림픽을 기점으로 다소 수그러드는 양상이다.

알리사 리우와 일리아 말리닌
미국 여자 피겨의 중국계 미국인 알리사 리우는 13세 때 트리플 엑셀을 성공했고 세계선수권을 제패했다. 그러나 이후 번아웃을 겪었다. UCLA에 진학하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니는 등 은퇴한 듯 보였지만,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반면 미국 남자 피겨의 일리아 말리닌은 단체전에서는 4회전 점프를 성공하며 일본을 꺾는 데 기여했지만, 개인전에서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8위에 머물렀다. 그는 4회전 반 점프(쿼드러플 엑셀)를 성공시킨 바 있으며, 이번 대회에서 5회전 점프를 시도할 가능성도 거론되었다.
카자흐스탄이 남자 피겨에서 우승했고, 일본은 2·3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차준환은 아깝게 4위에 머물며 포디엄 입성에 실패했다.
동계올림픽 강국 일본
피겨스케이팅에서 일본의 존재감은 여전히 강했다. 한국은 김연아 이후 그에 필적할 스타를 배출하지 못했다. 물론 차준환, 유영, 신지아, 이혜인 등도 세계적인 선수들이다. 그러나 일본은 하뉴 유즈루 이후에도 남자 피겨에서 꾸준히 메달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번 대회에서도 남자 2·3위를 차지했다. 여자 피겨에서도 금·은·동 석권에 가까웠으나 알리사 리우에게 금메달을 내주었다. 단체전에서도 일본은 미국에 간발의 차이로 금을 내주었다.
스노보드 빅에어에서는 차가온이 금메달을 차지했고, 일본은 남자 종목에서 금·은·동을 석권했다. 일본은 여자 스노보드 전 종목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종합 순위 10위권에 올랐다. 1972년 삿포로 올림픽의 스키점프 석권, 1998년 나가노 올림픽을 잇는 동계 강국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쇼트트랙의 아쉬움과 희망
쇼트트랙은 한국의 대표적 메달 종목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다른 나라 선수들의 체력과 기술이 크게 향상되어 더 이상 한국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황대헌은 이번 올림픽에서 은메달 2개를 획득했지만 경기 운영에서 다소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500m 경기에서는 안전 위주의 전략을 택했고, 5000m 계주에서도 공격적인 시도를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젊은 김길리와 고교생 임종헌은 차세대 쇼트트랙의 희망으로 평가받고 있다.
귀화 선수 논란
전지희(탁구), 이은혜, 임예나·권예(피겨 아이스댄싱), 김민석(빙상) 등 다양한 귀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안현수(빅토르 안)는 러시아로 귀화해 소치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했다. 임효준은 중국으로 귀화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과거 사건과 갈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복잡한 평가를 낳고 있다.
누가 옳고 그르다 단정하기보다, 귀화 선수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과 스포츠 시스템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올림픽은 국가 경쟁인가, 개인 스포츠의 집대성인가
한국은 여전히 국가 주도형 스포츠 시스템을 유지한다. 반면 미국 등 전통적 스포츠 강국은 개인 스포츠의 성취를 더 강조한다. 미국은 금메달 수보다 총메달 수를 강조한다. 노르웨이는 유소년 대회에서 순위를 없애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번 갈라쇼에서 차준환은 송소희의 국악을 선택했고, 이해인은 갓을 쓰고 연기했다. 순위와 무관하게 한국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한국 밥슬레이 팀은 8위에 머물렀지만 “토할 만큼 연습했다”고 밝혔다. 메달이 아닌 노력과 헌신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진정한 스포츠 사랑이 완성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