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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사우스 프라이둔 미디어컨설턴트, 바레인] 아흐메드 알 사아티는 언론사 편집국에서 출발해 일국의 대사까지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사아티는 언론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청하는 태도, 디테일을 읽어내는 능력을 강화해 왔다. 그 중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교는 그가 추구하는 핵심가치다.아흐메드 알 사아티는 30여년간 인쇄 매체와 방송을 오간 베테랑 언론인이다. 2011년, 그는 의회에 진출하면서 인생의 첫번째 전환점을 맞이했다. 의회의 감시자에서 의회의 구성원이 된 것이다. 당시 바레인 의회는 내부 불화와 집단 사퇴 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는 조국 바레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베테랑 언론인이 정계에 발을 들이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다.
그는 의원 재임 기간 동안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과감히 다뤘고, 국가의 경제기반을 강화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여러 법안들도 만들었다.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의회 안정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과제였다. 사아티는 다양한 성향과 배경을 가진 의원들과 의기투합해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율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대사직을 수행하는데 있어 커다란 자산이 됐다.
사아티는 의원직을 수행할 당시만 해도 국제무대에서 조국을 대표하게 될 것이라곤 상상치 못했다. 그러나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은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찾아오기 마련이다. “어느 날 러시아 연방 주재 바레인 전권대사로 임명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10분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예상치 못한 직위와 더더욱 예상치 못했던 목적지였다. 그러나 망설임은 잠깐이었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러시아의 언어부터 역사, 사회, 문화 등 모든 자료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그의 일가족이 러시아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들을 맞이한 것은 바레인과 비교가 안될 만큼 혹독한 추위였다. 언어와 문화, 생활방식, 거리의 풍경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때 중임을 맡긴 바레인 국왕의 조언이 떠올랐다. “사무실에 앉아 있지 말고,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어라.”
어리숙했던 신임 대사는 러시아인들과 관계를 형상하기로 결정했다. 공식 행사장 뿐만 아니라 곳곳의 마을과 협회, 축제 현장을 찾아다녔다. 말 그대로 위가 아닌 아래로부터 출발했다. 각 가정을 방문해 함께 식사하고 축제를 즐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소와 진심이었다.
현장을 누빈 그는 양국의 상호이해도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국의 예술가들을 초청해 전시회와 음악회를 열고 바레인의 역사를 적극 소개한 이유다. 이러한 행사들은 전통적인 의전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양국의 문화적 가교를 놓기에는 충분했다. 역사와 전설을 사랑하는 러시아인들은 바레인의 역사와 문화에 귀를 기울였다. 양국은 상대방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대를 강화해 나갔다.
그런 그에게 전례 없는 위기가 닥쳐왔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러시아가 국제적으로 고립된 것이다. 국제 제재와 항공편 중단, 금융 동결 속에 바레인 대사관 역시 운영 상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3개월마다 급여를 현금으로 운반했던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바레인 교민들과 소통하며 자국민들의 교육, 의료 등 기본권을 살뜰히 챙겼다.
2023년 12월, 러시아 정부는 아흐메드 알 사아티 대사에게 타국 외교관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우정훈장’을 수여했다. 양국의 외교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신뢰를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이 훈장에 대해 바레인 외교에 대한 헌사라고 밝혔다. 수상 이후 바레인 국민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행정 절차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는 후문이다.
언론을 떠난 지 오래지만 그의 기자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사아티 스스로 “때때로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안들을 훑어보기도 한다. 내 안의 기자혼이 살아있다는 반증인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여러 직군을 경험하면서 기자 특유의 탐구정신을 다스리는 법도 배웠다. 그간의 세월 동안 녹여낸 지식과 인간적인 감수성, 정무적인 균형감각은 그가 지금까지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아시아엔 영어판: Journalist-turned-Ambassador Uses Soft Power as Foreign Policy Tool – THE As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