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칼럼

오늘 관훈클럽 창립 69주년에 묻는다…기자정신과 동료의식, 그리고 사회적 책임 어떻게?

관훈클럽 입구 2026년 1월 8일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언론단체 관훈클럽이 제73대 집행부 출범과 함께 창립 69주년을 맞았다. 8일 서울 인사동 정신영기금회관에서 열린 취임식 겸 기념식의 화두는 ‘AI 시대, 레거시 미디어의 생존과 저널리즘의 본령’이었다.

관훈클럽은 1957년 1월 11일, 개혁적 문제의식을 지닌 기자 18명이 창립했다. 회장이나 대표 직함을 두지 않고 총무 중심 운영을 택한 것도 권위주의를 거부한 초창기 정신의 산물이다. 창립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박권상 선생의 관훈동 하숙집에서 출범해 ‘관훈클럽’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회원들

이날 행사에는 김진현 전 동아일보 논설실장, 안병찬 전 한국일보 베트남 특파원 등 원로 언론인과 역대 총무·임원들이 참석했다. 뜻밖의 진객으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자리해, 외교부 장관 시절 관훈토론회의 의미를 회고하며 축사를 전했다. 관훈클럽 집행부가 73대에 이르는 것은 중도 교체 등으로 일부 연도가 별도 집행부로 계산됐기 때문이다.

담론의 중심은 ‘레거시 미디어’의 재정의였다. 신문과 지상파 TV로 대표되는 정통 언론이 디지털·AI 환경, 중앙 서버를 거치지 않는 ‘바이패스 미디어’ 시대에 어떤 경쟁력을 갖출 것인가가 주요 논점이었다. 참석자들은 기술 변화가 곧 저널리즘의 후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전임 72대 총무 김승련 동아일보 논설실장은 “총무 임기를 마치며 기자라는 직업을 결코 쉽게 내려놓을 수 없다는 확신이 더 강해졌다”며 “레거시 미디어의 사명과 가능성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신임 73대 총무 이하원 조선일보 외교안보 에디터는 “정통 언론은 시대적 사명을 외면한 적이 없다”며 “그 자세를 지켜간다면 역할을 다시 인정받을 시점은 올 것”이라고 밝혔다.

52대 총무를 지낸 박정찬 전 연합뉴스 사장은 “월터 리프먼이 말한 ‘저널리즘의 위기’는 오늘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며 “관훈클럽이 그 극복의 중심에 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고령 참석자인 김진현 전 논설실장은 “관훈클럽은 대한민국 언론의 산 역사”라며 “타사 기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동료의식을 체득한 공간”이라고 회고했다.

행사장에서는 언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성찰도 이어졌다. 이규연 대통령실 공보수석이 언론인 출신으로서 짧은 소회를 밝혔고, 여야 수석대변인들이 상호 존중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관훈클럽 회지

관훈클럽의 창립 정신은 1957년 8월 발간된 <관훈클럽회지> 창간호 권두언에 집약돼 있다. “진실과 의를 내세우고 거짓과 사악을 물리쳐 자유와 평화의 복지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언론이 어찌 수구하여 주저앉아 있겠는가.” 69년 전의 선언은 오늘의 언론을 향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관훈클럽은 동시에 ‘우경화’ ‘귀족화’라는 외부의 비판과도 마주하고 있다. 행사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방어보다 성찰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공유됐다. 기술 변화 속에서도 신뢰 회복의 출발점은 겸손과 자성, 기자정신의 재확인이라는 공감대다.

1957년 독일 유학을 앞두고. 왼쪽부터 김영주, 정상영, 정주영, 정신영, 정인영, 정순영

이날 행사에서는 관훈클럽의 또 다른 역사도 환기됐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동생 고 정신영 기자는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활동하다 1962년 독일에서 요절했다. 정주영 회장은 1977년 관훈클럽에 기금을 기탁해 ‘정신영기금’을 조성했고, 이는 오늘날 정신영기금회관으로 이어졌다. 언론과 산업, 개인의 비극과 공적 기여가 교차한 상징적 사례다.

AI 시대의 거센 파고 앞에서 관훈클럽은 다시 묻고 있다. 언론의 본질은 무엇인가. 답은 단순하다. 기자정신과 동료의식, 그리고 사회적 책임. 창립 70주년을 앞둔 관훈클럽의 다음 행보는, 오래된 가치가 새로운 기술과 어떻게 조우하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대표, 김대중정치학교 대외협력본부장,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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