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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 거목 헬무트 조멘 별세…현대중공업과도 깊은 ‘인연’

헬무트 조멘과 부인 안나

세계 해운업계의 별 헬무트 조멘 박사가 지난주 별세했다. 1939년생으로 향년 86.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빈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60년대 말, 세계 최대 해운회사 중 하나였던 월드와이드 쉬핑의 회장 포 경(YK 파오)의 큰딸 안나와 결혼해 홍콩에 정착했으며, 장인의 해운업 경영에 참여했다. 그는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열정을 겸비한 전통적 유럽 지성인이었다. 때로는 완고했던 포 경의 경영에 유연함을 더했고, 그의 말년에 흔들리던 경영 노선을 바로잡았다.

조멘 박사는 현대중공업에도 익숙한 인물이었다. 시장이 어려울 때에도 그와 안나는 선박 명명식에 함께 참석해 늘 따뜻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었다. 1980년대 말 초대형 유조선 세 척 계약은 포 경의 마지막 사업이었다. 그는 정주영 회장을 홍콩에서 만나 직접 계약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협상은 포 경이 정 회장을 경계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정 회장이 이전 계약에서 금액 인상을 관철해 업계의 비판을 받았던 일이 영향을 준 것이다.

“이번에는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포 경은 반복해서 말했다.

“좋은 나이에 좋은 프로젝트를 함께하니 잘 마무리합시다.” 정 회장도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포 경의 계속된 경고는 결국 정 회장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정 회장은 한국말로 결론지었다. “나 이 계약 사인 안 해.”

그 순간, 나는 조멘 박사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제안했다. “두 분은 배석해 주십시오. 저와 조멘 박사가 서명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를 우리에게 넘겼고, 우리는 서명했다. 프로젝트는 이후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조멘 박사가 끝까지 책임 있게 마무리했다.

선박들이 인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 경이 세상을 떠났고, 나도 조선소를 떠났다. 2000년대 초 홍콩의 조멘 박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예전보다 더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았다. 그는 내가 오기 전 울산과 홍콩에서 함께 찍은 옛 사진들을 잔뜩 꺼내놓고 있었다.

“나는 당신을 늘 기억하고 있어요.” 그가 조용히 말했다.

1990년대 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홍콩의 양대 해운사 월드와이드와 아일랜드 내비게이션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반공 성향이 강했던 아일랜드 내비게이션의 창업주 CY 텅 회장은 늘 대만, 일본, 한국에서만 배를 발주했지만, 후세는 친중 노선으로 급선회했다. 그의 장남 CH 텅은 중국 통치 아래 홍콩의 초대 행정장관을 지냈고, 그룹은 중국 내에서 배를 짓고 사업을 확장했다.

반면 월드와이드 그룹은 포 회장 생전부터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의 대표 항공사 중 하나였던 드래곤에어의 실질적 주주였고, 홍콩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주요 주주이기도 했다. 그러나 포 회장 서거와 함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자, 조멘 박사는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기고 노르웨이의 베르게센 그룹을 인수해 베르게센 월드와이드를 창립, 유럽 해운업계의 거목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아들 안드레아스 조멘 파오가 경영 일선에 나서 450척이 넘는 선대를 이끌고 있으며, 조멘 박사는 생전에 아들의 든든한 후견인이자 세계 해운단체와 교육사업의 후원자로 활동했다. 헬무트 조멘 박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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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혁

황화상사 대표, 저서 '넘지 못할 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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