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지라 처음 KBS가 조용필 단독 공연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하지만 공연이 실현됐고 그것도 무료로 열렸다. ‘적은 금액이라도 유료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노래는 당연지사고 거기에 연주, 세트, 조명, 음향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으니까. 공영방송이 본연의 역할을 이토록 충실히 해낸 건 오랜만이다.
방송 후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시청률이 15.7%에 달했으니 요즘 보기 어려운 수치가 아닌가. 더 놀라운 건 세대를 초월한 공감이다. 10대부터 90대까지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감탄했다는 후기가 쏟아졌다. 게스트 하나 없이 28곡을 혼자 채운 무대, 그 28곡 전부가 아는 노래인 것이 신기하지 뭔가. 제목을 몰라도 멜로디가 흐르면 자연스레 따라 부르게 된다.
요즘 콘서트는 퍼포먼스나 게스트 무대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오롯이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나 곡마다 설명과 함께 가사 자막을 띄워서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한 점이 좋았다. 공연의 기승전결이 마치 인생 서사 같았다. 미래를 향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사랑을 찾아 헤매다, 세월의 무게 속에서 결국 삶의 이치를 깨닫는 전개. 첫 곡 ‘미지의 세계’의 가사가 ‘이 순간을 영원히’로 시작하는 것도 그래서 상징적이었다.

내가 처음 조용필을 본 건 1978년 대한극장에서 열린 ’78 김추자 리사이틀’이었다. 그날 조용필이 게스트로 나왔는데, 주객이 전도될 만큼 강렬했다. 그때 이미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이름을 알렸지만 1977년 대마초 파동으로 인한 공백기 때문인지 그날 처음 ‘조용필’이라는 가수를 봤다. 하도 앳되어 보여서 동년배려니 했건만 알고 보니 한참 연배가 위여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75세가 된 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때 그 눈빛으로 무대에 선다.
세 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체력과 집중력, 타고난 재능이겠지만 그보다 꾸준한 자기 관리가 만들어낸 결과다. 송창식도 매일 몇 시간씩 연습을 한다고 들었는데 이처럼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들을 방송에서 자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처럼 품격 있는 무대를 기획하고 선보인 KBS 박지영 대형이벤트 단장과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지난 8일 방송된 다큐멘터리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 그날의 기록>은 감동을 배가시켰다. 시청률 7.1%였는데 다큐멘터리로서는 비현실적인 수치가 아닌가. 32년간 불러온 곡들을 세 시간 동안, 실제 공연 순서 그대로 10번 이상 연습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함께 고생한 밴드 ‘위대한 탄생’ 멤버들이며 백그라운드 보컬 배영호·김효수씨도 소개해줘서 좋았다.
KBS 교향악단과 협연하는 장면에서 조용필이 “소리가 너무 좋아서 감동하면서 부릅니다”라고 수줍게 한 마디 했다. 실은 귀에 문제가 생겨 자신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었다는데 그럼에도 단원들을 격려하며 무대를 이끈 모습, 이게 진짜 어른의 품격이 아닐까. 팬들의 사연 또한 마음을 울렸다. “내 팬이라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한마디가 인생을 바꿨다는 교사, 40년간 부부가 함께 그의 노래를 들으며 일을 해왔다는 이야기들. 결국 그의 음악은 사람을 바꾸는 힘을 가진 셈이다.

“천재가 꾸준히 노력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보여줬다”는 박지영 단장의 말, “조용필이 없었다면 한국 가요계와 문화계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한경천 예능센터장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완벽을 향한 집념과 그걸 방송으로 담아낸 KBS의 성의와 추진력. 이번 추석, 가왕과 KBS가 함께 만들어낸 이 무대야말로 살가운 진짜 ‘명절 선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