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의 시] ‘추석秋夕날’ 홍신선(1944~ )

山所 몇군데/南陽洪公之墓로/편안하게 끝이 나 있는 이들./얼마를 더 걸어가야 끝이 나는가./떠돌던 가이없음, 떠돌던 비겁함이/끝나서 이렇게 임야 몇 坪으로 돌아오는가.-본문에서

추석엔 다 내려왔다. 어디선가 기별도 없이 못 오는 아우.
오는 길도 기다림도 다 치우고
고만고만 쭈그리고 앉아 큰방에서 茶禮를 기다렸다.
눈이 작아 겁이 없던 아우를
깊은 어둠속에 잘 숨던 그를
이야기하고 불편하나 한결같은 伍와 列에, 한결같은 無言에
키 맞추고 있는 이 고장 논들도 이야기하고.

마루에는 宗家의 늙은 형이 祭床을 보고 있다.
깎아서 門中처럼 괴인 사과, 배, 감, 식혜, 산적……
우리는 開器에 앞서 서로의 형편 갈라서
시저 구르고 엎드렸다.
숙이면 들리지 않는, 왠지 過去뿐인 큰절.
祝을 읽고
초헌과 아헌을 끝냈다.

마당가의 대추나무가
까치 집 하나로
가슴이 다 헐려 있다.
잘살겠다던, 外場으로나 떠돌던 젊은날도
허옇게 마른 벼이삭 몇으로 꺾이고
사촌형들은
바짝바짝 집 쪽으로만 등 들이미는 텃논들로
뜻없음을 만들어 살고 있다.

음복술에 취해 우리는 산을
가까운 先山을 돌았다.
성미 빠른 밤나무들이 아랫도리를 벗어던진 채 있었다.
그 나무들 사이 밤가시에 찔린 공기들이
딱딱 입 벌린 채 소리없이 소리 지르고 있다.
(기침해, 발소리 좀 울려, 너무 무기력뿐이야.)

山所 몇군데
南陽洪公之墓로
편안하게 끝이 나 있는 이들.
얼마를 더 걸어가야 끝이 나는가.
떠돌던 가이없음, 떠돌던 비겁함이
끝나서 이렇게 임야 몇 坪으로 돌아오는가.

돌아오며
우리는 떠날 일을 생각했다.
낮 세시 차에 수원의 형이
출가한 누이가 떠났다.
동네 하늘을 제 몫으로 나누어 가지고
떠도는 밀잠자리들.
추석이었다.

편집국

The AsiaN 편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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