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회

현대가 정주영-정신영 형제, 동아일보와 이어진 ‘인연’

정주영 현대건설 창업자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1915~2001)은 형제와 자녀가 많기로 유명한 재벌가 인물 가운데서도 단연 두드러진다. 1915년 일제강점기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현재 북한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6남 2녀 중 장남이었다. 당시만 해도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집안이었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 속에서 여덟 남매를 키워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장남 정주영은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기둥으로서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동생들을 돌보며 성장했다.

그의 삶에는 늘 ‘대가족’이라는 키워드가 따라다녔다. 정주영은 본인도 훗날 8남 3녀를 두어 다산(多産)의 DNA를 이어갔다. 현대그룹을 일구고 재계의 거목이 된 뒤에도 그는 언제나 가족과 친척들, 자녀들과의 인연 속에서 살아갔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대가족 제도가 여전히 뿌리 깊었던 시절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정주영은 경제계와 정계에 널리 알려졌듯 부인 외에도 여러 여인과 자녀를 두었다. 이는 흔히 재벌가에 얽힌 비화로 전해져왔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의 부인 변중석 여사의 태도였다. 온화하고 덕망 있는 성품으로 소문난 변 여사는 남편이 바깥에서 낳아온 자녀들마저도 군말 없이 받아들여 키웠다. 이는 평범한 여성이라면 결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녀는 오히려 품 넓게 자녀들을 보듬었다. 정주영 가문의 화목과 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변 여사의 이러한 내면적 힘이 크게 작용했다.

한편, 정주영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는 아픔이 있었다. 바로 학력 콤플렉스였다. 그가 이룬 업적은 거대했지만, 그의 학력은 통천군 송전소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중학교조차 진학하지 못한 채 집안 생계를 돕기 위해 일터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늘 그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정신영

이 때문에 열여섯 살 어린 넷째 동생 정신영(1931~1962)은 형에게 각별한 존재였다. 정신영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했을 때, 정주영은 자신의 한(恨)을 대신 풀어주는 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더 나아가 정신영이 동아일보 기자가 되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정주영에게 동아일보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가 살던 마을의 이장이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었는데, 소년 정주영은 저녁이면 이장 집을 찾아가 그날 본 신문을 빌려 읽곤 했다. 학교 교실보다도, 교과서보다도 더 많은 지식을 신문에서 얻을 수 있었다. 당시의 경험은 그에게 큰 자극이 되었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주었다. 훗날 정주영은 “내 인생의 대학은 동아일보였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넷째 동생 정신영이 동아일보 기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가족의 성공을 넘어선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형이 소년 시절부터 품어온 학습의 갈증과 언론에 대한 동경이 동생을 통해 현실로 이어진 것이다. 정주영은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고, 주변인들에게 자랑스럽게 동생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대가족의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또 자신의 한계를 동생의 성취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정주영의 인간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철저한 성취지향적 기업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족의 성공과 명예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정주영에게 동생 정신영은 단순한 혈육 이상의 존재였다. 정신영이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언론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은 형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대리 만족이자, 동시에 집안의 명예를 빛내는 사건이었다. 정주영은 공개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내심으로는 누구보다 동생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렇듯 정주영의 삶에서 가족과 형제, 그리고 동생 정신영의 존재는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을 이룬다. ‘현대그룹 창업자’라는 거대한 타이틀 이면에는 가난한 시절 함께 자라난 형제들과의 기억이 깊게 배어 있으며, 특히 넷째 동생 정신영을 향한 애정과 자부심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대표, 김대중정치학교 대외협력본부장,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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