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신앙을 탐구한 영적 대서사시입니다. 어린 시절의 회상에서 시작해 청년기의 방황, 마니교와 철학의 영향, 그리고 회심과 세례, 어머니 모니카와의 이별을 거쳐, 마지막에는 시간과 창조, 삼위일체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시리즈는 그의 삶과 사상을 따라가며, 인간의 연약함과 은총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줄 것입니다. <편집자>
<고백록> 제4권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청년기 중 19세에서 28세까지, 약 10년에 걸친 경험을 다룬다. 그는 카르타고와 고향 타가스테에서 수사학 교사로 활동하며, 세속적 성공과 방탕한 생활, 그리고 한 친구의 죽음을 겪는다. 이 시기는 그의 영혼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지만, 동시에 삶과 죽음, 진리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수사학 교사로서의 명예와 허영
카르타고에서 학업을 마친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향 타가스테로 돌아와 수사학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명성과 부를 추구하며, 제자들에게 화려한 수사학을 가르쳤다. 당시 로마제국에서 수사학은 정치와 사회에서 출세를 위한 핵심 기술이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능력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는 곧 스스로의 삶이 허영과 욕망에 지배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명예와 재산, 결혼과 권력에 눈이 멀어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속였고, 또 다른 이들을 속였다.” 수사학을 가르치는 일은 진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을 설득하고 지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이 시기에 그는 한 여인과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이 여인과의 관계는 무려 13년간 이어졌고, 그 사이에서 아들 아데오다투스가 태어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훗날 이를 깊이 후회하며, “정욕의 굴레에 묶여 자유를 알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당시 그는 이 관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속적 쾌락을 통해 공허를 메우려 했다.
철학적 사색과 진리에 대한 모색
아우구스티누스는 방탕한 생활 속에서도 진리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철학 서적을 탐독하며, 세상의 본질과 인간의 삶에 대해 사색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십범주>(Κατηγορίαι, Categories))에 매료되었으나, 그것이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는 하느님을 여전히 물질적 존재로 생각하며, 신을 빛나는 거대한 물체로 상상했다고 회상한다.
이러한 오류는 마니교 교리의 영향이기도 했다. 그는 “하느님은 크기가 엄청난 물체이며, 나는 그 물체의 작은 조각이었다”라고 믿었다. 하지만 곧 그것이 얼마나 왜곡된 사고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신은 물질의 일부가 아니라, 모든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영적 실체였다.
친구의 죽음-영혼을 뒤흔든 상실
이 시기의 가장 큰 사건은 ‘친구의 죽음’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또래의 한 친구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그는 이 친구를 “내 영혼의 절반”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병으로 친구가 세상을 떠나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극심한 슬픔에 빠졌다. 그는 “내 삶은 지옥이 되었다. 어디를 가든 그와 함께 나눈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찢어졌다”고 고백한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을 만들었다. 그는 비로소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죽음이 얼마나 무자비한지를 절감했다. 그는 절망 속에서 하느님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그의 믿음은 미약했고, 오히려 허무와 회의에 빠져들었다. “만일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이 이렇게 크다면, 인간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죽음을 통한 성찰
아우구스티누스는 친구의 죽음을 통해 사랑과 상실, 죽음의 본질을 성찰했다. 그는 깨달았다. 인간이 사랑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질 수밖에 없으며, 영원히 붙잡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느님뿐이라는 것을. 그는 “내 영혼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찢어졌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만 참된 안식을 찾을 수 있다”고 고백한다.
이 깨달음은 훗날 그의 신학 사상으로 발전한다. 즉, 세속적 사랑은 필연적으로 상실을 낳지만,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영원하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상실의 고통을 겪지만, 그 고통은 결국 영원한 사랑으로 이끄는 길이 될 수 있다.
철학에서 신앙으로의 전환점
친구의 죽음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를 향한 갈망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여전히 마니교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점차 그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는 마니교 교리에서 답을 찾지 못했고, 오히려 더 깊은 혼란에 빠졌다”고 회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신앙으로 나아갈 토대를 쌓았다. 죽음을 통한 성찰,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그리고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갈망은 그가 결국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는 준비 과정이었다.
<고백록> 제4권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탕한 청년기와 수사학 교사로서의 허영, 그리고 친구의 죽음을 통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그는 명예와 쾌락을 좇았지만, 결국 사랑하는 이의 상실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절감했다. 이 경험은 그의 영혼을 절망으로 몰아넣었지만, 동시에 영원한 하느님을 찾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사랑한 것은 반드시 사라졌다. 그러나 주님, 당신 안에서만 사랑은 영원하다.” 이 고백은 단순한 개인적 슬픔의 기록을 넘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보편적 진리를 드러낸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으며, 그것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가? <고백록>은 오늘날 독자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