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에서는 ‘쓰다 달다 짜다 싱겁다, 혹은 간이 안맞다’는 식으로 음식에 대해서는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는 기본법도가 무의식중에 존재한다. 나온 음식은 어머니의 손에서 나온 그것처럼 맛있게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달착지근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다’거나 ‘기가 막힌다’는 식의 시시껄렁한 과장된 수식이나 표현의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다. 그러면 음식을 하는 손이나, 먹는 입이 서로 어색해진다.
슴슴한 ‘안동국시’의 맛이나 ‘간고등어’ 구이와 찜의 담백함에 굳이 ‘자질부레한’(군더더기같은) 수식어가 붙을 계제가 아예 없다. 북어를 두드리고 다듬어서 보푸라기처럼 한올 한올 긁어내는, 정성 가득한 ‘북어보푸라기’에 지르는 탄성이라면 모를까.
외지인들이 안동에 와서 즐겨먹는 음식 중에 ‘헛제사밥’이란 것이 있다.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사 때 음복으로 먹던 음식을 흉내 낸, 즉 ‘가짜 제사밥’이다. 제사를 지낸 후 먹는 음식은 간을 하지 않아서 경상도식 표현을 빌자면 ‘밍밍하다.’ 그래서 제사상에 올랐던 음식들을 챙겨서 탕국을 끓여 함께 먹는 것이 제삿밥인데, 제사음식이 푸짐하니까 옆집 보기 민망해서라도 헛 제사를 지내는 척하고 몰래 먹었다. 그래서 헛제사밥이라 불리지만 한 상 가득 오른 반찬들은 대갓집 주안상 부럽지 않는다. 안동소주나 막걸리 한 잔 하기에 좋다.
그렇다고 이처럼 ‘슴슴하고 밍밍한 그야말로 담백한’ 음식만을 안동의 맛이라고 특징짓거나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안동시내에는 웬만한 도시와 마찬가지로 온갖 식당이 즐비하다. 한우를 즐기는 고기족을 위한 안동갈비골목이 있고, 당면을 넣어 조리한 독특한 ‘안동찜닭 골목’도 있고 곱창골목도 있다. ‘붉은’ 물김치 비주얼의 ‘안동식혜’는 먹어보지 않고서는 감히 그 맛을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권철(1503~1578)이 어느 날 벼슬에서 물러나 경북 안동으로 내려와 지내는 도산으로 와서 퇴계 이황을 찾았다고 한다. 퇴계는 끼니때가 되자 손님상을 내오도록 했다. 세계 10위내의 부자나라가 된 요즘에는 안동 종갓집 ‘접빈’(接賓) 음식으로 정갈하면서도 품위있는 ‘7첩 반상’을 내놓을 것이다. 퇴계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퇴계는 손님이 와도 평소 상을 내놓았다. 말이 손님상이지, 보리밥에 산나물과 가지무침과 미역 등의 반찬 세가지가 전부였다. 퇴계는 기름진 고기반찬처럼 맛있게 먹었다. 반면 따로 상을 받은 권철은 한양 입맛에 맞지 않는 거친 시골밥상에 제대로 숟가락질을 하지 못했다. 퇴계는 정승의 밥상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천했다.
‘선비순례길’이 시작되는 선성현 객사에 퇴계의 그 밥상이 재현돼 있어 생각났다. 이처럼 내륙 깊숙한 안동의 밥상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을 것이다. 해산물과 젓갈류가 풍부한 전라도의 여염집 밥상에 비한다면, 퇴계의 밥상은 머슴의 밥상보다 나은 게 없었다. 안동 등 경북 북부에는 종갓집이 유달리 많다. 문화재로 지정된 종가만 120여 곳에 이른다. 종가집마다 나름 문중음식이 전해 내려오고 ‘주조법’도 남달랐다.
반가(班家)마다 손님접대방식이 달랐고 제례법도 차이가 났다. 손님을 대접하는 ‘접빈’(接賓)과 조상을 모시는 제례(祭禮)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과 술이다. 이 지역에 전해내려 오는 대표적인 고(古)조리서는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 온주법 그리고 시의전서다. 지금의 안동음식은 종가음식이 대중화된 측면이 강하다. ‘간고등어’와 ‘문어’가 제수의 중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고조리서 중에서 수운잡방은 안동 군자마을의 광산 김씨 예안파의 시조 김효로의 둘째 아들인 탁청정 김유와 그의 손자 김령이 공동저술한 한문본 음식조리서로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조리서다. ‘온주법’은 내앞마을 의성 김씨 낙봉파 김시우씨가 소장하고 있던, 1700년대 후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 한글조리서다. 이런 종가음식의 전통이 자연스럽게 대중화된 것이 지금의 안동음식이다.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골목 안 깊숙이 숨어있는 보석같은 식당이 있게 마련이다. 봄비내리는 고즈넉한 봄날, 혹은 장마가 시작된 축축한 초여름, 아니 낙옆 떨어지는 스산한 가을날 오후, 그리고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배추전’이나 ‘부추전’ 한 장 부쳐놓고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안동을 찾은 오래된 친구를 만나고 싶은 그런 고향집 툇마루 같은 식당 말이다.
안동 신시장에서 한 블록 너머는 안동우체국과 안동교육청이 자리한 오래된 구도심에 속한다. 우체국 건너 그 골목 살짝 들어간 동네가 ‘당북동’이다. 그 골목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첫 번째 모퉁이에 ‘고향묵집’이 있다. 더 들어가면 돼지국밥과 안동국시, 순대국밥 식당도 있다. 1997년 ‘고향묵집’이라는 상호로 식당을 열 때는 안동세무서 앞에 있었다. 고향묵집은 그 때부터 ‘묵’ 잘하는 식당으로 꽤 이름을 날렸다. ‘손맛’ 좋은 사장이 매일 묵을 쑤어서 차린 식당이었다. 내 입맛에는 이 식당의 모든 음식이 안동의 맛을 대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선 안동국시와 메밀묵을 주 재료로 한 ‘태평초’도 인기메뉴다. 종편의 유명 먹방 프로그램였던 ‘수요미식회’에 이곳의 태평초가 소개될 정도로 이 식당의 명성은 전국적으로 자자하다. 북어찜과 오징어와 낙지 명란젓갈 등 입맛을 돋우는 철마다 다른 젓갈과 나물무침 등 어느 것 하나 정갈하지 않은 찬은 없다.

고향묵집의 시그니처는 안동이 자랑하는 적당히 삶아 탄력있는 문어숙회나 고기 수육이 아니다. 겨우내 잘 저장한 제주무를 얇게 저미듯 썰어 부쳐내는 ‘무전’이 가장 맛있을 때가 지금이다. 경상도식 배추전과 파전은 ‘장물’이 아니라 초장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을 여기 와서야 확인할 수 있다. 장물은 헛제사밥에 넣어 비빈다면 심심한 안동국시에 간을 할 때는 장물이 아니라 간장에 파 송송, 고춧가루 한 숫갈 투하한 빨간 ‘장물’을 넣어야 제대로 국시맛이 난다는 것도 배운다. 고향묵집에서는 특별히 메뉴를 시키지 않더라도 사장님이 알아서 주는 대로 먹는 방식도 편하게 선택할 수 있다. 물론 그건 단골들에게 주는 특혜다.
봄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봄볕 좋은 저녁 무렵. 퇴근 후 낙동강을 가로질러 구도심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다가 그 식당에 들어서면 간혹 지인 한 둘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정도로 안동 한량들에겐 아주 잘 알려진 곳이다. 물오른 ‘무’를 적당한 두께로 잘라 전을 부치면 무가 익으면서 내는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배가된다. 고향묵집에서 처음으로 ‘무전’을 만나는 날에는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무전 맛이 떠올랐다. 입맛은 혀끝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되살려낼 때 더 생생해진다. 아마도 경상도지방 이외에서도 군것질거리로 무전을 해먹었을 텐데 그 기억이 생생한 건 우리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구순이 가까워진 어머니는 고향집에 다니러 갈 때마다 어린 시절 맛있게 먹던 음식들을 기억해서 당신이 꼬부랑 할머니가 됐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부엌에 서곤 한다.
고향묵집에선 후식도 호사다. 마지막엔 늘 안동식혜를 먹는다. 시중에 파는 ‘비락식혜’는 안동에선 식혜가 아니라 ‘감주’다. 술이 아니지만 달콤한 맛에 ‘단술’이라고 불렀다. 안동식혜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불룩 나온 뱃살을 줄여주는 그런, 엄마의 ‘약손’같은 후식이다. 저녁 든든히 먹고 가라며 슬쩍 내주는 ‘시레기무 비빔밥’도 고향묵집 별미 중 별미로 꼽힌다. 어쩌다 사장님이 내놓는 안동식 비빔국시라도 만나면 횡재한 날이다. ‘고향묵집’(054-855-3077)은 간혹 예약하지 않고 갔다가 자리가 없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안동여행을 계획한다면 2~3일 전에 미리 전화를 해서 예약하는 것이 좋다.

안동에는 고향묵집 외에도 유명한 먹방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있는 식당들이 꽤나 많다. 그러나 진짜 안동의 맛은 종가음식보다는 그저 시장통 한 귀퉁이에 있는 낡고 오래된 식당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시내를 다니다보면 ‘간고등어구이’를 맛있게 하는 식당도 많고 안동갈비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갈비골목도 있고, 헛제사밥이나 찜닭 혹은 안동 권씨 종가음식을 정성껏 내놓는 대갓집 같이 으리으리한 ‘예미정’ 도 있다. 오래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중화반점도 안동세무서 앞의 서울식당 등 여럿 눈에 띈다. 그런 식당들이 모두 안동을 안동답게 해주는 다양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