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문화

빗속의 연꽃과 나, 그리고 미지로부터의 깨달음

연꽃과 연잎 그리고 물방울 <사진 이병철>

아침에도 빗소리를 듣는다. 지난번 큰비가 내린 뒤로 비가 연일 오락가락한다. 마치 장마 때와 같다. 한창 불볕더위가 쏟아져야 할 8월 중순에 장마철처럼 이렇게 비가 내리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정상적인 날씨는 아니다. 이제 8월 장마나 가을 장마도 별로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기후대로 바뀐 것 같다. 앞으로 이런 기상 변화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도 알 수 없다.

계속 내린 비로 연지에도 물이 불어 출입을 금지한다는 줄을 쳐 놓았다. 연지 둘레를 돌면서 비에 젖어 있는 연꽃을 만난다. 비 때문인가, 활짝 피어 있는 연꽃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꽃은 빗속에서도 피어남을 멈추지 않는다고 노래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꽃도 피어남을 멈추고, 날이 환하게 개이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제대로 수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 들어 더욱 자주 드는 생각이다. 나이 들수록, 세상에 대한 나름의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과 세상을 더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갈수록 잘 모르겠다는, 모른다는 생각이 더 자주 든다.

연밥 <사진 이병철>

젊은 날의 그 확신에 찬 생각들, 옳고 그름과 정의와 불의가 명확하게 분별되던 그 판단들이,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대한 경험이 쌓일수록 오히려 경계가 흐릿해지고 모호해진다. 그래서 누군가가 확신에 찬 주장을 할수록 내 내면에서는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더 커진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내가 안다고 하는 것도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그렇다고 여기는 하나의 생각일 것이다. 생각은 사실 자체가 아니다. 어쩌면 ‘안다’는 그 생각이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을 더 제한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다는 그 생각에 묶여 그 너머를 볼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온통 알 수 없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속에 서서 내가 안다는 그 짧고 좁은 생각에 묶여 세상의 무한함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이, 우리가 안다는 것의 실체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내 생각이 틀림없다는 그 확신, 이른바 확증편향이다. 그 확증편향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광기로 치달은 숱한 역사를 우리는 보아왔다. 올해 도반들과의 공부 모임 주제는 ‘죽음’이다. 죽음을 알기 위해서는 삶을 먼저 알아야 하고, 그 삶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삶의 주체인 존재, 곧 내가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죽음이 있고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죽음이 무엇인지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삶이 없다면 죽음 또한 없을 것이기에, 잘 사는 것이 곧 잘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지에는 날마다 꽃이 피고 진다. 피었기에 지는 것이다. 이 빗속에서도 내 앞에 맑고 고운 자태로 나투어 있는 이 연꽃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연밥만 남긴 뒤 저버린 그 꽃은 어디로 갔는가. 저 연꽃의 한 생과 우리네 한 생이 다르지 않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꽃 피어 있다가 어떻게 지고 있는가. 나의 이번 생이 지고 나면 그 죽음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가. 무아(無我)와 윤회(輪回)를 이야기해보지만, 이 또한 하나의 생각일 뿐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지금 그 알 수 없다는 것이 내게는 불안이 아니라 하나의 설렘으로 다가온다.

미지, 곧 알 수 없음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는, 나 자신의 존재를 포함하여 알 수 없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이 생각, 이 자각이 빗속의 연꽃을 더 깊게 만나게 한다. 고맙다는 그 생각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연꽃과 연밥과… <사진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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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시인, 생명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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