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머니(Money)’란 치매 환자가 보유한 예금, 부동산 등 자산을 일컫는 말이다. 주인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돈이기에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고, 심각한 치매 증상으로 인해 금융계좌 인출이 어렵거나 부동산 매매가 불가능해지는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앞선 일본에서는 이미 ‘치매 머니’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건강보험공단, 서울대 건강금융센터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202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치매 환자들이 보유한 자산, 즉 ‘치매 머니’는 153조5,416억 원에 달한다고 지난 5월 6일 발표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6.4%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이처럼 큰돈이 장롱이나 은행 계좌에 방치되면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약 124만 명으로, 이 중 약 62%인 76만 명이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1인당 평균 약 2억 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처럼 치매 환자가 전체 인구의 2.4%에 불과함에도 보유한 자산 규모는 GDP의 6.4%에 달한다. 자산 구성은 부동산이 71.5%(113조7,959억 원), 금융자산이 21.7%(33조3,561억 원)였다. 특히 부동산 자산은 본인의 사망이나 상속 전까지는 유동화가 어려운 ‘묶인 돈’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치매 환자가 향후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30년에는 178만7,000명, 2040년 285만1,000명, 2050년에는 396만7,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치매 머니도 2030년 220조 원, 2040년 351조 원, 2050년에는 488조 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2050년의 488조 원은 그 해 GDP의 15.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치매 머니는 말 그대로 ‘숨어 있는 돈’이자 ‘죽은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산은 또한 치매 환자의 판단력 저하로 인해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에 악용될 위험도 있다. 더불어, 자녀 간 상속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가 특정 자녀에게만 증여할 경우, 다른 자녀들의 반발로 법적 분쟁으로 번지기 쉽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로 ‘성년후견제도’가 있다. 가족들은 가정법원에 치매 환자를 ‘피성년후견인’이나 ‘피한정후견인’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피성년후견인은 질병, 장애, 노령 등으로 인해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자를 말하며,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검사,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후견 개시를 청구할 수 있다.
일본의 사례는 더욱 극단적이다. 2024년 기준 일본의 GDP는 609조 엔이며, 치매 환자가 보유한 금융 자산만 해도 126조6,000억 엔(약 1,230조 원)에 달한다. 이는 일본 GDP의 약 21%로, 자산이 묶여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65세 이상 인구의 10~13%가 치매 환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 고령자 상당수는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음에도 자산 관리에 대한 대비가 미비하다. 기대수명(남성 81세, 여성 87세)이 길고 치매에 대한 위기감이 낮기 때문이다. 일본 금융권은 본인이 아니면 자금 인출을 허용하지 않기에, 부모가 치매에 걸리면 가족은 성년후견인 신청을 통해서만 계좌를 열 수 있다. 이 절차에는 평균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자녀가 없거나 왕래가 거의 없는 독거노인의 경우, 계좌에 자산이 있어도 병원비나 요양원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치매 머니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성년후견제도의 활용이 절실하지만, 현재 일본에서도 치매 환자의 약 5%만이 이를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치매 머니의 동결이 환자 개인뿐 아니라 일본 경제 전반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치매 관리에 드는 국가 비용은 다음과 같이 증가하고 있다.
△2022년 93만5,087명(20조8,000억 원), △2023년 98만4,601명(22조6,000억 원), △2030년 141만8,600명(38조 7,000억 원), △2040년 226만3,400명(78조2,000억 원), △2050년 314만8,700명(138조1,000억 원), △2060년 339만7,300명(189조3,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치매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치매보험 가입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치매보험은 임상치매척도(CDR: Clinical Dementia Rating)를 기준으로, 진단 후 90일간 상태가 지속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장성 상품이다. 보험금은 진단비, 간병비, 생활비 등으로 구성되며, 보험사들은 최근 다양한 특약과 보장 범위를 가진 상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가입 전 보장금액, 지급조건, 횟수 등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CDR 기준에 따른 치매 단계는 다음과 같다.
△무증상(0점) △경도인지장애(0.5점) △경도(1점) △중등도(2점) △중증(3점) △심각(4점) △말기(5점)
과거에는 주로 중증 치매 중심으로 보장했지만, 최근에는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치매까지 보장하는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검사비와 약물 치료비까지 보장 범위를 확대한 상품도 많으며, 대부분의 치매보험은 CDR 3점부터 월 생활비를 지급한다.
최근에는 치매와 간병을 동시에 보장하는 보험 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경우, 장기요양등급 1~2등급을 받아야 요양원에 입소할 수 있다. 그보다 낮은 등급을 받은 경우에는 재가서비스만 가능하며, 하루 3~4시간 정도의 요양보호사 방문 지원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로 인해, 민간 보험을 통한 치매·간병 대비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치매 머니는 평생 땀 흘려 모은 돈을 환자가 스스로 써보지도 못하고 묶이는 현실을 말한다. 그렇기에 무조건 아끼고 저축하는 것보다, 건강할 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것을 보며, 장학금이나 복지기금 등으로 기부하는 등 슬기롭게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게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누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