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측지학 및 지구물리학 연합(IUGG: International Union of Geodesy and Geophysics)은 지구의 구조와 변화를 연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학술 연맹이다. 본래 측지학(Geodesy)과 지구물리는 독립적 영역이었지만, 오늘날에는 하나의 융합 분야로 통합되어 있다. IUGG는 현재 8개 분과로 구성되며, 각각은 지진, 화산, 기후, 해양, 극지, 수문, 자기권, 측지 등 지구를 구성하는 다양한 시스템을 연구한다.
예컨대, IACS는 남극과 북극의 빙권을 다루며, 이는 최근 우리나라가 집중하는 북극항로 개발 및 극지 연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IAG는 정밀한 국토 측량을 담당하며, 현대에는 대부분 위성을 활용해 우주 공간에서 이뤄진다. IAGA는 지구 자기장을 다루는데, 조류나 동물들의 이동과 자원탐사에도 응용된다. IAHS는 물순환과 수자원을, IAMAS는 기후변화와 대기, IAPSO는 해양 흐름과 보전을 연구한다. IASPEI는 지진을 분석해 자연지진과 핵실험을 구분하는 기술을 제공하며, IAVCEI는 화산 활동을 감시하고 그 영향을 분석한다.
필자는 1980년대 유학 시절, 미국 지도교수의 지원을 받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IUGG 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은 동구권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중립국이었고, 미국은 이를 활용해 소련 과학자들과의 비공식 교류를 장려했다. 지진파 분석을 통해 지하 핵실험 여부를 식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IUGG는 미국 안보 전략의 일환으로 기능했다.
냉전 종식 이후 IUGG에 대한 서방의 관심은 줄었지만, 필자는 새로운 국면이 다시 열리고 있다고 본다.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 경쟁이 격화되면서, 과학기술 협력과 정보교류의 플랫폼으로서 IUGG의 중요성이 되살아나고 있다. 특히, 한국은 과거 오스트리아처럼 과학외교의 중립적 조정자로서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동맹국이자 기술 강국인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있는 과학 교류를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과학은 단순한 학문을 넘어 외교와 안보, 산업과 전략의 중심에 서 있다. IUGG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은 한국이 글로벌 과학외교의 중심국가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과거 냉전이 지구과학의 시대를 열었다면, 앞으로의 새로운 질서에서도 한국이 그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027년 인천 송도에서 열릴 IUGG 총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이 세계 지구과학자 5천 명 이상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단순한 학술행사를 넘어, 과학외교의 새로운 무대를 여는 상징적 사건이다. 특히 극지연구소 등 관련 인프라가 집약된 인천 송도는 국제 협력과 전략 과학기술 교류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 과학 외교의 중심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