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동 카페] ‘무이로(MUIRO) 커피’…무채색과 서른한 살 최한수의 자신감

증명사진의 배경은 보통 흰색이나 옅은 회색이다. 채도 없이 명도만 있는 무채색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대상을 강조하는 성격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경춘선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무이로(MUIRO) 커피’는 그런 무채색 배경을 닮은 공간이다. 꾸밈 없이 단정하고 담백한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손님들과 메뉴가 주인공처럼 떠오른다.

유리창 너머,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정돈된 바 테이블과 어우러져 하나의 장면처럼 펼쳐진다.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색감에 지친 눈이 편안해지고, 한쪽 테이블에서 오가는 대화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무이로는 ‘없을 무(無)’와 일본어로 색을 뜻하는 ‘이로(色)’를 합친 이름이에요. 말 그대로 무채색이죠. 저희가 공간을 드러내기보다 손님과 메뉴가 빛나는 배경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최한수 대표의 말이다.

메뉴로 증명하는 트렌디함
무이로커피는 2023년 11월 문을 열었다. 2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감각적인 메뉴와 정제된 공간미로 지역 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대표 사례는 파블로바. 머랭 위에 요거트와 망고, 초콜릿 등을 얹은 호주·뉴질랜드식 디저트로, 1920년대 세계적인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메뉴지만, 눈과 입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또 다른 시그니처는 테린느. 초콜릿, 설탕, 달걀, 버터, 말차가루 등 최소한의 재료로 만든 일본식 디저트로, 꾸덕한 식감이 특징이다. 차갑게 식혀 먹는 이 디저트는 진한 풍미와 함께 무채색 공간과도 잘 어울리는 정적 매력을 가진다.
커피와 음료에서도 개성이 뚜렷하다. 미세한 거품이 층을 이룬 드라이 카푸치노는 마치 ‘떠먹는 카푸치노’처럼 즐길 수 있고, 홍차 위에 우유크림을 올린 ‘런던포그’는 안개 낀 런던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보리를 활용한 보리아메리카노, 보리라떼, 보리아인슈페너 등 디카페인 음료도 독특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핸드드립 커피도 수준이 높다. 에티오피아 시다마 봄베 내추럴 G1, 콜롬비아 라 에스페란사 워시드, 콜롬비아 디카페인 등 다양한 싱글오리진 원두를 사용하며, 특히 ‘무산소 발효’ 방식으로 가공된 콜롬비아 원두는 무이로커피만의 인상을 남긴다.
무산소 발효는 산소가 차단된 상태에서 파치먼트 커피를 발효시키는 비교적 고급 가공 방식으로, 원두의 풍미를 더욱 독특하게 끌어낸다.
최한수 대표는 “2024년 5월 열린 제2회 경춘선 공릉숲길 커피축제에 참가했을 때, 무산소 발효 커피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셨다”며 “그때를 계기로 더 많은 손님들이 저희를 알게 됐다”고 했다.
이 외에도 곶감을 활용한 곶감커피, 인절미를 곁들인 아포가토, 설탕을 태운 얇은 층을 깨먹는 크렘브륄레 슈페너 등 무이로커피는 계절마다 창의적인 메뉴를 선보이며 감각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확장하고 있다.

문화 담는 공간
무이로커피의 존재감은 메뉴에만 머물지 않는다. 내부 한쪽에 마련된 전시 공간은 지역 예술가들과 손님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무대다. 현재는 예술 전공 대학생이 만든 도자기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비정기적으로 다양한 창작물들이 소개된다.
“빈 벽을 작품이 채우면 공간도 살아나고, 예술가 분들께는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죠. 앞으로도 꾸준히 공유할 생각입니다.” 최한수 대표의 포부다.

20대의 도전, 무채색 안의 색깔
최한수 대표는 올해 서른한 살. 2년 전, 스물아홉의 나이에 카페 창업에 도전했다. 고등학생 시절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고, 여러 카페에서 일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본격적으로 커피의 세계에 빠진 건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일하던 4년 전쯤. 독학으로 핸드드립과 다양한 음료 조합을 익히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파블로바도 그 과정에서 개발한 메뉴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쌓아온 다양한 경험은 큰 자산이 되었다. 의류업을 하는 부모님을 도우며 재단 기술을 익혔고, 직접 옷을 제작해 브랜드를 운영한 경험도 있다.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플레이팅 감각을 키웠고, 음식의 시각적 매력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
무이로커피의 정제된 미감과 고급스러움은 대표의 경험과 태도에서 비롯된다. 장식을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무채색 미학은 공간과 메뉴, 운영 철학 전반에 녹아 있다. 손님과 메뉴가 주인공이 되는 이곳에서, 앞으로 어떤 새로운 메뉴와 사람들이 빛날지 기대된다.
※ 무이로커피는 2025년 6월 7일~8일 열리는 제3회 경춘선 공릉숲길 커피축제에 참가했다. 노원 지역 카페존에서 무이로커피의 다양한 커피와 디저트를 만날 수 있다.
*서울 노원구 동일로186길 77-7 1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