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릉동 ‘형광커피’…대학친구 둘이 빚는 ‘진심의 향기’

대학 친구사이인 이형광 대표(왼쪽)와 유상준 대표

점심시간, 공릉동 서울과학기술대 부근에 위치한 형광커피는 오늘도 손님들로 북적인다. 주인장과 다정한 인사를 주고받으며 커피 컵을 들고 나서는 이들의 표정이 밝다.

“서울과학기술대, 원자력병원 직원분들이 주요 고객이죠.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다 보니 단골이 꽤 많습니다. 근처 식당가에서 식사 후 들르시는 분들이 많고요.” (이형광 공동대표)

매장 맨 뒤에 설치된 로스터기

‘점심 태풍’이 지나간 뒤 매장에 들어서자, 홀쭉한 유리병에 확성기 모양의 관이 꽂힌 물건이 눈에 띈다. 원두커피 향을 맡을 수 있는 ‘커피 시향기’(위 사진)다. “글로 적힌 원두 설명은 금세 잊어버리기 마련이잖아요. 대신 직접 향을 맡아보면 원두별 특징을 바로 느낄 수 있어요. 손님들이 신기해하며 좋아하십니다.” (유상준 공동대표)

조용히 빛나는 커피

형광커피는 2013년 2월 문을 열었다. 이형광 대표가 혼자 시작했고, 이후 대학 동기이자 친구인 유상준 대표가 3년 전 합류했다. 커피에 푹 빠진 친구가 한 자리에서 10년 넘게 카페를 운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유 대표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 커피를 배우며 자연스레 함께하게 됐다. 제과학원에서 디저트 제조법도 익혔다.

카페명 ‘형광커피’는 이형광 대표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업자 등록하러 세무서에 갔는데, 상호를 한글로 적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제 이름을 그대로 썼죠. 기억에 잘 남는다고들 하세요.”

커피 바에 진열된 다양한 원두커피

이름처럼 형광커피 내부는 밝고 단정하다. 10평 남짓한 공간 안에 커피머신, 로스터기, 블렌더, 오븐 등 주요 설비들이 알맞게 배치돼 있다. 벽 쪽 긴 의자 위 교자상이 아담하게 놓여 있다. “3년 전 리모델링하면서 바꿨어요. 예전엔 내부도 어두웠고, 간판도 검정색이었어요. 새롭게 단장하고 나니 동네 주민 몇 분은 ‘언제 생긴 카페냐’고 묻기도 하더라고요. 10년 됐다고 말씀드리면 믿지 않으세요.”

그만큼 형광커피는 오랜 시간 조용히 자리를 지켜왔다. 이형광 대표는 매일같이 커피를 볶고 내리며 손님을 맞았다. 그렇게 진심이 담긴 커피는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단골손님이 직접 쓴 글에서도 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잡다한 커피 장비도 없고, 값비싼 유명 원두도 없지만 형광커피 사장님은 수수한 도구와 재료로 언제나 맛있는 커피를 내리신다. 솜씨를 자랑해도 될 법한데, 그저 손님들이 커피를 즐겁게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홍영준 과장(전 병원장), 칼럼 ‘형광커피를 아시나요’ 중에서

회사원에서 커피인으로

이 대표는 대학에서 도시계획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다니다 커피와 만났다. 2011년 직장 근처의 ‘다동커피’에서 커피 강좌를 듣다가 커피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6개월간 종합반 수업을 들었고, 결국 회사를 나와 커피업으로 전향했다. 수료 후에는 대학로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일하며 실무를 익혔다. 처음엔 로스팅도 배웠지만, 카페 초창기에는 직접 로스팅을 하지 못했다. 실전은 배운 것과 달랐고, 여유도 없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3년 후부터 로스팅을 시작했다.

“처음엔 수동 로스터기로 연습했어요. 로스팅 프로파일 잡는 게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계속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친절한 ‘커피 취향’ 안내자

형광커피는 핸드드립과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 커피를 모두 제공한다. 드립용 원두는 10종으로 구성되며 수시로 변경된다. 과테말라 로스마 게이샤 워시드, 에티오피아 시다마 벤사 타미루 치라카 내추럴, 에티오피아 코체레 사오나 워시드 등 원두 이름만으로도 원산지, 가공 방식까지 확인할 수 있다. 메뉴판에는 각 원두의 맛 특성도 안내되어 있어 초심자에게 유익하다.

선택의 폭도 넓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주문할 때도 고소한 맛, 산미, 쓴맛 등 취향에 맞게 선택 가능하다. 약간의 추가 비용으로 싱글오리진 원두로도 즐길 수 있다. “마음 같아선 프렌치프레스, 에어로프레스, 모카포트 등 다양한 추출 방식도 고르게 해서 커피 맛의 폭을 체험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이형광 대표

커피 한 잔 속, 빛나는 인연

1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형광커피는 커피를 매개로 다양한 인연을 만들어왔다. 개업 초기에 인근 대학 음악동아리 학생들이 만든 앨범 <봄, 형광카페>는 그들의 꿈을 담은 첫 작품이었다. 매일 혼자 와서 커피를 마시던 한 학생의 어머니가 “이 카페 덕분에 아들이 많이 안정되었다”며 10잔을 선결제하고 간 일화도 있다.

단체 및 나들이용 원두 캔 커피(500㎖).

형광커피 바에 앉아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해보자. 커피 원산지와 특징을 설명해주는 이형광 대표의 목소리엔 향처럼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다. 진심으로 내린 커피 한 잔 속에서, 스스로도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너의 향기 가득 담아
내게 와 줄래
지나온 겨울이 너무 추웠다면
봄의 따뜻함으로

<봄, 형광카페> 앨범 수록곡 ‘안아줄게’ 중

*서울 노원구 공릉로 187 건설빌딩 1층

손인수

카페문화웹진 '카페인' 발행인, 커피비평가협회 학술문화이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