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잠깐묵상] 무관하나 무심하지 않다

‘빌라도 법정에 선 예수’ 미하이 문카치 작품. 앉아 있는 사람이 빌라도 총독

신명기 21장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신 21:3)

신명기 21장 초반에는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을 처리하는 규정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정결례와 속죄 의식을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은 사건 현장과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수습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억울했을지도 모릅니다. 사건에 직접 개입한 것도 아니고, 사건을 목격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마치 본인이 관련되어 있었던 것처럼 수고해야 했습니다. 자기 일이 아닌데, 자기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율법 규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무관하다고 무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알빠노’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내 알 바 아니다’라는 뜻의 신조어입니다. ‘알 게 뭐냐’는 것입니다. 단순히 젊은 세대가 가볍게 쓰는 유행어로 치부하기에는, 이 사회의 현실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반영하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혹여나 그 일 때문에 나에게 불똥이 튈까봐 철벽을 치고 ‘알빠노’를 시전하는 일이 많습니다. 사람이 아프든, 쓰러지든, 죽어가든 돌아볼 마음의 여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심해도 될 일에는 지나친 관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SNS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굳이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될 사람들의 삶까지 들여다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옆집에 사는 청년이 고립 속에서 죽어가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데,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이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떤 차를 샀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알림 설정을 해 둡니다.

예수님이 재판받으실 때, 빌라도는 손을 씻으며 말했습니다. “내 알 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람으로, 사도신경에 이름이 박제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마치 자신의 죄인 것처럼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2000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33살짜리 청년이랑 나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맞습니다.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아무 상관없는 나를 구원하시고자 나의 죄를 예수님 자신의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잠깐묵상 오디오듣기⬇)

https://youtu.be/-kDRFnOAmac?si=ddwjYXXgVGsESS_B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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