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베이직 묵상] 간음한 여인을 대하는 예수님의 ‘공의와 사랑’

예수님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간음한 여인을 데려 온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돌을 내려놓거나 무작정 용서하라고 하진 않으셨습니다. 돌로 치라고 명하셨습니다. 다만, 돌로 치긴 치되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드러내는 말씀이었습니다.(본문에서)


함께 기도할 제목

1. 말씀 안에서
– 비판과 비난의 돌을 들기 전에 나의 죄를 먼저 돌아보게 하소서
–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2. 교회 공동체
– 세상과 나눌 생명의 양식이 언제나 풍성한 교회가 되게 하소서
– 돈을 사랑하는 시대이지만,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3. 나라와 열방
– 우울, 불면, 불안, 공황에 시달리는 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의 평안으로 지켜주소서
– 모든 선교지에서 교단과 교회의 이름보다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하소서

-BASIC CHURCH 권명철 목사의 열두 줄 묵상-
-요한복음 7:53-8:11, 율법을 이기는 사랑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1. 예수님은 지금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초막절은 출애굽 이후 40년의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 은혜를 기념하기 위해 광야에서 장막을 치며 지냈기에 ‘장막절’이라고도 불렸습니다.

2. 또한, 한해의 농사를 마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일종의 추수감사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장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즉, 온전히 감사를 표현하는 절기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감사의 제목들을 가지고 성전으로 나아갔습니다.

3. 그런데 모두가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절기에, 감사와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종교 지도자들인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감사는 뒷전이고 오직 예수님을 고발할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4. 그래서 그들은 이른 아침,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시신 예수님 앞에 음행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끌고 난입했습니다. 꼭두새벽부터 간음하다 잡힌 여인도 문제지만, 그 여인을 끌고 성전에 들어와서 예배 중간에 난입하는 무례함은 하나님조차 무시하는 ‘교만’이었습니다.

5. 율법은 간음한 남자와 여자를 모두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남자는 보이지 않고 애꿎은 여인만 잡아 왔습니다. 율법이 그토록 중요하다며 성전까지 여인을 끌고 온 그들이, 정작 율법을 어기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의 의도적인 흑심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6. 그들의 진짜 의도는 예수님을 시험하고 고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주 자극적인 소재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해 놓고, 예수님을 고발할 거리를 찾는 아주 완벽한 함정이었습니다.

7. 그러나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8. 예수님은 돌을 내려놓거나 무작정 용서하라고 하진 않으셨습니다. 돌로 치라고 명하셨습니다. 다만, 돌로 치긴 치되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드러내는 말씀이었습니다.

9. 또한 율법 시스템에 대한 지적과 고발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행하던 율법 시스템은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래 주신 율법의 목적과는 많이 어긋나 있는 모습입니다.

10. 율법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율법으로 정죄를 하는 이유는 공동체의 거룩함과 질서를 지키기 위함과 죄를 억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정죄의 목적은 심판을 피하기 위함인데, 그들은 심판하고 죽이기 위한 정죄를 일삼았습니다.

11. 예수님은 죄인이 죄인을 심판하는 어처구니 없는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내가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의롭게 되었다는 착각을 없애고, 은혜의 원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정죄와 심판이 아니라 용서와 자비를 나타내셨습니다.

12. 그리고 여인에게 말씀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수치와 죄악의 자리였던 곳이 사랑과 은혜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분노한 군중들은 사라지고, 사랑의 주님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 여인과 같기를 바랍니다. 온갖 죄악으로 무너진 우리 삶의 자리에도 사랑의 주님만이 남기를 기도합니다.

베이직교회 아침예배(1.27) 동영상

권명철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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