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어 입석에서 암자로 올라갔다산길에는 어깨에 눈을 얹은 마른 들꽃이 앉아 있었고 열매 붉은 가시나무 위에 앉아 있던 겨울새가 놀라 얕은 비명을 질렀다. 아름드리나무들 사이 아련한 목탁소리가 내 곁을 지나 산 아래로 내려갔다. 숨 찬?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알아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지만 큰 맘이?? 내 안에 안겼다. 마른 풀꽃과 같이, 놀란 겨울새와 같이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에서 그 겨울을 살아야 했다. 최명숙 시집 <따뜻한 손을 잡았네> 중에서(사진은 시인이 찍은 청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