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나는 영국 화가 에드윈 랜드시어의 그림을 소재로 「개의 눈에 비친 성배…쓰러진 주인 지키는 마지막 충성」이라는 글을 썼다(개의 눈에 비친 성배…쓰러진 주인 지키는 마지막 충성). 그림 속 개는 죽은 주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주인이 다시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듯하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말없이 곁을 지키는 것이 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충성이었다.
얼마 전 영화 <The Heart of the Beast>를 보았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퇴역 주임원사 제임스 벨몬트와 군견 오딘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랜드시어의 그림을 떠올렸다. 두 작품에는 주인과 개, 그리고 죽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개가 보여주는 충성의 모습은 서로 달랐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가까운 장면이다. 심한 출혈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진 제임스는 바위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다. 오딘은 그 앞에 서서 주인을 바라본다. 제임스는 오딘에게 말한다.
“미안하다.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이 너의 마지막 임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오딘에게 명령을 내린다. 자신이 죽은 뒤에도 오딘이 살아남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사람을 찾아가라는 부탁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제임스는 움직이지 않는다. 오딘은 주인의 죽음을 확인한 듯 잠시 머뭇거린다. 그리고 전날 받은 마지막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약 11km를 이동한 오딘은 비포장도로 한가운데 서서 지나가는 트럭을 막아선다. 차에서 내린 젊은 여성이 다가와 묻는다.
“You friendly?”
여성은 오딘의 등에 달린 작은 가방에서 편지와 군번줄을 발견한다. 그 편지에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오딘을 돌봐달라는 부탁이 담겨 있었다. 제임스에게 오딘은 단순한 군견이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함께 살아남았고, 서로의 상처를 견뎌온 가족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다시 랜드시어의 그림을 생각했다. 그림 속 개는 주인의 곁에 남아 있다. 영화 속 오딘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그 곁을 떠난다. 한쪽은 떠나지 않는 충성이고, 다른 한쪽은 떠나야 하는 충성이다. 그러나 그 마음의 뿌리는 다르지 않다.
어쩌면 제임스가 오딘에게 남긴 마지막 임무는 군인으로서 내린 명령이라기보다 가족에게 남긴 부탁에 가까웠을 것이다. 자신의 생은 끝나더라도 오딘의 생은 계속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딘은 주인의 마지막 말을 지켰고, 낯선 사람에게 그 유언을 전달했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며 사람 사이의 인연을 생각했다. 우리는 누군가의 곁을 지켜야 할 때 떠나기도 하고, 떠나야 할 때 곁에 남기도 한다. 때로는 말 한마디, 약속 하나를 지키는 일이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 남겨지기도 한다.
개도 저러하거늘, 하물며 인간인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