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죽은 자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들…제갈량은 수레에, 엘 시드는 백마에

죽어서도 군대를 움직인 제갈량과 백마에 실려 전장에 나선 엘 시드, 그리고 국민 배우의 죽음을 추모하는 오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구성했다. 고인을 기억하는 것과 그 이름을 빌리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AI 생성 삽화>

30년 전 선거 경쟁자의 추모에서 떠올린 질문…고인을 기억하는 것과 그 이름을 빌리는 것은 같은 일인가

죽은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이름은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삼국지연의》에는 제갈량이 죽은 뒤에도 군대에 영향을 미치는 장면이 나온다. 촉군의 퇴각을 맡은 강유와 양의는 제갈량의 죽음을 숨기고, 제갈량을 닮은 목상을 수레에 앉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민다. 이를 본 사마의는 제갈량이 살아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추격을 멈춘다. 이른바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달아나게 했다(死諸葛走生仲達)’는 이야기다.

서양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앤서니 만 감독의 1961년 영화 《엘 시드》다. 주인공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는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숨을 거둔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은 갑옷을 입힌 시신을 백마 바비에카에 태워 전장으로 내보낸다. 죽은 영웅의 모습은 살아 있는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고 적을 두렵게 한다.

동서양의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지만, 그가 생전에 쌓은 권위와 명성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움직인다.

최근 국민 배우 최불암씨의 부고를 접하면서 이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다. 《수사반장》의 박 반장이었고, 《전원일기》의 김 회장이었다. 한 세대는 그를 형사로 기억하고, 다른 세대는 농촌 마을의 어른으로 기억한다. 연기자로 살아온 세월이 60년을 넘는다.

그런데 그의 부고 기사에는 배우로서의 생애 외에 한때 정치에 몸담았던 이력도 빠지지 않았다. 한 우물을 오래 판 사람도 다른 우물에 발을 담그면 그 흔적이 평생 따라다니는 모양이다. 오랜 세월 쌓아온 한 분야의 명성에 짧은 외도가 어떤 색깔을 더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남기는 이력은 본인이 원한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부고와 함께 또 하나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30년 전 한 선거에서 그와 경쟁했던 젊은 정치인이 추모의 글을 올렸다. 당시에는 국민 배우와 정치 신인의 대결이었다. 선거가 끝난 뒤 낙선한 배우가 당선자에게 훗날 ‘국보급 정치인’이 되라는 덕담을 건넸다는 일화도 전해졌다.

참 따뜻한 이야기다. 경쟁에서 패한 사람이 승리한 사람에게 덕담을 건넸다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생각도 해보았다.

존경받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와의 인연을 다시 꺼내 놓는다. 오래전 나누었던 말 한마디, 함께했던 자리, 짧은 만남도 추모의 글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고인을 기리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고인과 어떤 관계였는지를 세상에 알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진심인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난 자기표현의 욕구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수도 있다.

제갈량의 목상을 수레에 앉힌 강유와 양의는 군대를 지키려 했다. 엘 시드의 부하들은 죽은 장군을 백마에 태워 전장에 내보냈다. 이들은 모두 죽은 이의 권위가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수레도 백마도 필요하지 않다. 추모문 한 편이면 충분하다. 죽은 사람과의 인연을 꺼내 놓는 것만으로도 그 이름의 일부를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일을 모두 의심할 필요는 없다. 고인을 기억하고 그가 남긴 뜻을 이어가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몫이다. 다만 추모의 말이 고인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말을 하는 자신을 향하고 있는지는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나는 흑백 TV 앞에서 박 반장을 보며 자랐다. 범인을 쫓던 그의 모습도 기억하지만, 동료 서 형사의 사진을 바라보던 모습은 더욱 오래 남아 있다.

그때 박 반장은 말이 없었다.

이제 박 반장을 연기했던 배우도 떠났다.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그의 작품을 다시 이야기한다. 그가 남긴 배역과 실제 삶을 구분하면서도, 한 시대를 함께 살아온 배우에게 작별을 고한다.

죽은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다. 제갈량도, 엘 시드도, 박 반장도 이제는 말이 없다. 다만 그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말할 기회가 있다.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과 죽은 사람의 이름을 빌리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어쩌면 추모의 품격은 그 차이를 아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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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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