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키플링의 시 ‘If-’에서 찾은 연구자의 길…“실패는 끝이 아니다”

황건 교수 ‘The Journal of Craniofacial Surgery’ 발표…키플링의 시 ‘If-‘에서 찾은 인내와 성장의 지혜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러디어드 키플링(1865~1936)의 청동 흉상. 지네트 빙게이 르죈이 1936~1937년 제작,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

이 글은 황건 이화여대 의과대학 초빙교수가 국제학술지 《The Journal of Craniofacial Surgery》 2021년 3·4월호(제32권 제2호, 457쪽)에 발표한 영문 기고문 ‘You Will Be a Researcher, My Student!’를 바탕으로 아시아엔이 재구성한 것이다. 원고는 2018년 8월 20일 접수돼 같은 해 12월 7일 게재 승인됐다. 황 교수는 논문 심사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If-‘를 연결해 젊은 연구자들에게 필요한 인내와 자기 신뢰의 의미를 전한다. <편집자>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에도 너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그들의 의심을 헤아릴 수 있다면….”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의 시 ‘If-‘에 나오는 구절이다. 황건 이화여대 초빙교수는 이 구절에서 연구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세를 발견했다. 학술지에 논문을 제출하고 심사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연구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비판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연구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자신이 투고한 논문에 대한 학술지의 결정 통보를 받은 경험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가 받은 통보는 ‘대폭 수정 요구(Major Revision Required)’였다. 심사위원의 의견에 따라 논문을 수정하더라도 게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연구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오랜 시간 연구하고 정성껏 작성한 논문이 심사 과정에서 대폭적인 수정을 요구받거나 거절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황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겪으면서 영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2018)을 보러 갔다. 영화 속 주인공 이선 헌트는 영국 총리에게 접근하기 위해 시인 키플링의 시를 암호로 활용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황 교수는 오래전 배웠던 시 ‘If-‘를 다시 떠올렸다.

“의심 받더라도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키플링의 시 ‘If-‘는 삶의 어려움 앞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묻는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할 때에도 스스로를 신뢰하되, 그들의 의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마주하되 어느 한쪽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강조한다.

황 교수는 이러한 가르침이 연구자의 삶과 닮아 있다고 보았다. 의학 연구, 특히 임상연구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연구계획을 세우고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했다고 해서 곧바로 학술지에 게재되는 것도 아니다.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아 논문을 수정해야 하고, 때로는 수개월에 걸친 심사 끝에 거절 통보를 받기도 한다. 이 과정은 젊은 연구자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 자신의 연구가 충분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연구자로서의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황 교수는 심사위원의 비판을 실패의 판정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비판에는 연구를 발전시키는 단서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수정 요구를 통해 논문의 논리를 보완하고 자료를 재검토하는 과정 자체가 연구자의 역량을 키우기 때문이다.

논문이 거절돼도 연구자는 성장한다

황 교수는 자신의 논문이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친 끝에 게재 승인을 받았던 경험도 소개했다. 그러나 그는 논문 게재가 연구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논문이 온라인에 공개되면 독자들은 저자의 주장에 질문을 던지고, 연구 결과에 이견을 제기할 수 있다.

저자는 그 질문에 답하고 자신의 연구를 설명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바로잡을 책임도 따른다. 연구자의 책임은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황건 교수는 제자들과 논문을 작성하면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논문이 거절되거나 반복적인 수정 요구를 받으면 젊은 연구자들은 낙담한다. 그럴 때 황 교수는 연구 과정에서 겪는 좌절이 오히려 연구자를 성숙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논문의 게재 승인과 수정 요구, 거절은 모두 연구자가 경험하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어떠하든 연구를 지속하며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않는 일이다.

“기다릴 줄 알고,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황건 교수는 키플링의 시를 제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일부 구절을 연구자의 현실에 맞게 바꾸어 들려줬다.

연구와 논문 출판 과정에서 기다릴 수 있고,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다른 연구자들이 의심하더라도 자신의 연구를 믿으면서 그들의 의심을 존중할 수 있다면, 게재 승인과 수정 요구, 거절을 만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이러한 과정을 견뎌내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너는 연구자가 될 거야, 나의 제자여!”

논문이 한 번에 게재되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 심사위원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연구의 한계를 인정하며, 다시 수정하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는 성장한다. 황 교수는 반복되는 심사와 수정, 거절의 경험이 연구자의 인내심을 기르고 학문적으로 성숙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가 제자들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은 연구자는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와 비판 속에서도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연구를 이어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키플링의 시가 한 세기 넘게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대와 분야는 달라졌지만 인내와 자기 신뢰, 타인의 비판을 존중하는 태도는 여전히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황 교수의 글은 논문을 준비하는 의학도와 젊은 과학자들뿐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실패를 끝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다시 시작할 기회로 받아들이는가.”

황 교수가 제자들에게 건넨 “너는 연구자가 될 거야”라는 말에는 한 번의 성공보다 긴 시간의 성장을 믿는 스승의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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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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