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와 나…”그날 나는 세이렌을 보지 못했다”

몇 년 전 더블린에서 ‘Anatomical Society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학회가 열렸다. 당시 대학생이던 딸도 함께 갔다. 딸은 포스터 발표를 했다. 학회가 끝난 어느 저녁, 주최 측에서 참가자들을 위한 문학기행(literary walk)을 마련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약 30명의 참가자가 모였고, 우리는 안내인을 따라 더블린의 거리를 걸었다.
그날 저녁 찾아간 곳은 ‘The Duke’라는 술집이었다. 술집 안에서는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2인극도 보았다. 한쪽 벽에는 조이스가 자신의 책을 출간해 준 해리엇 위버에게 보낸 육필편지가 걸려 있었다. 책에서 읽던 조이스가 그날은 술집 벽에 걸린 편지 한 장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오스카 와일드가 다녔던 트리니티 대학도 보았다. 거리와 대학과 술집이 모두 문학의 무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날 정작 중요한 것을 하나 보지 못했다. 세이렌이었다. 술집에는 여급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딸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젊은 영국 의사가 있었다. 의대를 졸업하고 FY2를 하고 있었고, 나중에는 성형외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해부학회에서 포스터를 발표한 것도 아마 그와 관련된 경력을 쌓으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성형외과 의사인 나와 의대생인 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딸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테이블에만 머물렀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조금 다른 곳에 신경을 썼더라면, 두 사람은 더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냅둘걸. 그랬더라면 나도 술집을 조금 더 여유 있게 둘러보았을 것이다. 여급들의 얼굴도 보고, 그들의 목소리도 듣고, 술집 안에 흐르는 음악에도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젊은 의사를 신경 쓰느라 정작 조이스의 세이렌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조이스는 호메로스의 세이렌을 더블린의 호텔 바 안으로 데려왔다. <오디세이아>에서 세이렌은 바닷가의 바위 위에서 노래한다. 선원들은 그 노래에 이끌려 죽음으로 향한다.
그러나 조이스의 세이렌은 괴물이 아니다. Miss Douce와 Miss Kennedy, 호텔 바의 여급들이다. 그들은 술을 따르고, 말을 걸고, 웃는다. 조이스는 그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에 피아노 소리, 잔 부딪히는 소리, 거리의 소리까지 겹쳐 놓는다. 호텔 바 전체가 하나의 음악이 된다.
특히 이 문장이 그렇다. “Bronze by gold heard the hoofirons, ringing.” 청동색 머리와 금빛 머리가 나란히 서고, 그 장면에서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Hoofirons. 눈으로 보는 장면이 귀로 들린다. 조이스의 세이렌은 아름다운 얼굴보다 소리로 유혹한다. 그래서 <율리시스>의 ‘Sirens’는 읽는 소설이라기보다 듣는 소설에 가깝다.
나는 그 대목을 읽다가 문득 더블린에서의 그 저녁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세이렌을 보지 못했다. 어쩌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는데도.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더 이상 거대한 바다가 아니다. 더블린의 거리다. 십 년에 걸친 방랑은 하루가 되고, 영웅은 전쟁에서 돌아온 장수가 아니라 신문 광고를 파는 평범한 남자 레오폴드 블룸이 된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이렇게 소시민의 하루가 된다.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에게도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아주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호텔 바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 들어가 앉는다. 이국적인 여인들이 보인다. 누군가 웃는다. 잔이 부딪힌다.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Bronze by gold heard the hoofirons, ringing.”
나도 잠시 그곳에 앉아 있어도 되지 않을까. 물론 나는 그런 곳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잠시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는 있을 것이다. 오디세우스도 결국 돌아갔다. 블룸도 돌아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몰리 블룸의 “Yes”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나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조금 아쉽다. 그날 그냥 냅둘걸. 처음에는 딸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의사를 두고 한 말이었다. 지금은 조금 다른 뜻으로 들린다.
딸은 딸대로 이야기를 나누게 두고, 나는 술집의 풍경을 천천히 바라볼걸. 여급들의 웃음소리도 듣고, 그들의 노랫소리에도 귀를 기울일걸. 그랬더라면 어쩌면 나는 그날 더블린에서 조이스의 세이렌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세이렌은 그때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블린에서 지나쳤던 여급들이 이제 조이스의 문장 속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번에는 천천히 그들의 노래를 들어본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오디세우스처럼. 블룸처럼. 하루를 다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