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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추어리] ‘겨울해바라기’ 김근태 화백, 상처를 품고 끝내 빛을 피우다

김근태 화백, 2020년 5·18 40주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오월, 별이 된 들꽃’ 특별기획전에서 인사말.

5·18 시민군에서 장애인·발달장애 예술가의 벗으로…뉴욕 유엔에서 밀라노까지

별세 두 달 전 “AI 잘 활용하고 있네요…늘 소식을 드리고 싶은 분”

김근태 화백이 세상을 떠났다. 9월 1일 오전이었다. 향년 69세. 1980년 5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스물세 살 미대생은 그 뒤 46년을 더 살며 자신의 상처와 다른 이들의 아픔을 그림으로 바꾸었다.

그의 마지막 개인전 가운데 하나가 지난해 겨울 도가헌미술관에서 열린 ‘겨울해바라기’였다. 전시장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겨울의 끝에서도 해바라기는 빛을 향해 선다. 그 빛은 결국 인간과 예술이 함께 지향하는 희망이다.” 지금 돌아보면 꼭 김근태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문장 같다. 겨울의 한복판에서도 고개를 들어 빛을 찾는 해바라기, 상처를 안고도 그것을 원망이나 절망으로 끝내지 않고 사람과 예술을 향한 빛으로 바꾸려 한 사람. 김근태는 그런 화가였다.

2025년 11월 25일부터 12월 28일까지 열린 ‘겨울해바라기’전에서 도가헌미술관은 그의 작품을 장애인 인권이라는 메시지에만 가두지 않았다. 40여 년간 현실의 고통과 희망을 응시하며 쌓은 색과 빛, 질감, 반복된 붓질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성취라고 평가했다. 화면 속 인간은 하나의 초상을 넘어 ‘감정의 풍경’으로 확장됐다. 그 전시에 나온 신작의 해바라기는 겨울 속에서도 빛을 향해 서 있었다. 김근태 자신처럼.

1980년 5월, 살아남은 사람

김근태는 1957년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미대에서 공부했다. 1980년 5월 대학 2학년이던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에 참여했다. 5월 27일 계엄군의 최후 진압을 앞두고 전남도청을 빠져나와 살아남았다. 그러나 육체가 살아남은 것과 마음이 살아남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함께했던 이들을 두고 자신만 살아나왔다는 죄책감은 오랫동안 그를 붙잡았다. 방황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한쪽 귀의 청력을 잃고, 교통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도 잃었다.

2018년 <아시아엔> 인터뷰에서 그의 삶을 다시 되짚은 적이 있다. 광주에서 시작된 죄책감,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다닌 시간, 그리고 목포에서 만난 지적장애 아이들. 그 아이들이 김근태를 다시 살게 했다. 그는 그들의 얼굴에서 자기 얼굴을 보았다고 했다. 세상은 그들을 부족하다고 했지만 김근태에게 그들은 오히려 인간의 가장 순수한 얼굴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잃어버린 자기 영혼을 그는 지적장애 아이들의 눈과 표정에서 다시 만났고, 그때부터 그들을 그렸다.

김근태 화백 작품들

김근태를 생각할 때 나는 ‘본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두 눈을 가지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 많다.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 말이 느린 사람, 표현이 서툰 사람, 생산성과 경쟁이라는 기준에서 뒤처졌다고 평가받는 사람을 너무 쉽게 지나친다. 김근태는 한쪽 눈을 잃었지만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오래 바라봤다. 그는 지적장애인을 ‘불쌍한 사람’으로 그리지 않았고 보호와 동정의 대상으로 세워놓지도 않았다. 꽃처럼, 별처럼 그렸다.

그래서 그의 대표작 제목이 ‘들꽃처럼 별들처럼’이다. 100호 캔버스 77개를 이어 길이 100m가 넘는 대작이다. 남도의 사계절 속에 지적장애 아이들이 뛰놀고 웃는다. 비발디의 ‘사계’에서 영감을 얻어 캔버스를 하나의 악보처럼 펼치고 아이들을 음표처럼 그려 넣었다. 그 아이들을 뉴욕 유엔본부까지 데리고 간 사람이 김근태다. 2015년 세계 장애인의 날을 계기로 뉴욕 유엔본부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됐고 이후 베를린, 리우 패럴림픽, 제네바 유엔사무국, 파리 유네스코, 평창 패럴림픽 등으로 무대가 넓어졌다.

2015년 유엔 전시 당시 김근태 화백과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 부부 <사진 뉴시스>

오준 대사와 ‘미술인생의 도반’

그 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오준 전 유엔대사다. 두 사람의 인연은 참 김근태답게 시작됐다. 사람보다 그림이 먼저였다. 당시 주유엔 한국대사이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 의장이던 오준 대사가 김근태의 작품 사진을 먼저 보았다. 작품의 힘을 알아본 오 대사가 유엔 전시를 연결하면서 두 사람의 긴 인연이 시작됐다.

나는 2018년 <아시아엔>에 ‘오준 대사가 김근태 화백 ‘빛속으로’ 전시회에 유화작품 찬조하는 까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오 대사는 자신의 작품까지 김근태 전시에 내놓았다. 장애인 인권과 미술이라는 두 분야에 대한 열정을 함께 나누는 김근태 화백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제네바 전시와 평창패럴림픽 등 여러 활동을 함께했고, 나는 그때 김근태에게 오준 대사를 ‘미술인생의 도반’이라고 표현했다.

그 인연은 훗날 더 큰 일로 이어졌다. 김근태의 관심은 자신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데 머물지 않았다. 발달장애 예술가들이 직접 세계무대에 설 수 있도록 판을 만드는 쪽으로 넓어졌다.

별세 반년 전에도 밀라노에 있었다

올해 3월 김근태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을 맞아 열린 ‘아트패러(ArtPara) 밀라노-코르티나 2026’의 기획자였다. 전 세계 30개국 142명의 발달장애 화가가 참여했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이 행사가 단순한 민간 전시가 아니라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패럴림픽의 공식 문화프로그램인 ‘문화올림피아드’로 채택됐다는 점이다. 밀라노 현장에서 올림픽 조직위원회 문화교육 담당자는 기획자 김근태에게 문화올림피아드의 상징물인 토템을 전달했다. 오준 전 대사는 이 행사의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나는 이 장면이 김근태의 말년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목포의 작은 시설에서 지적장애 아이들을 만나 그리기 시작했던 화가가 30여 년 뒤 세계 30개국의 발달장애 화가 142명을 밀라노에 모았다. 처음에는 그들을 그렸다. 나중에는 그들이 직접 그릴 수 있도록 곁에 섰고, 마침내 그들이 세계 한가운데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김근태 예술의 완성은 어쩌면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 그 장면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화백이 7월 4일 필자에게 보내온 유튜브 영상 링크

두달 전 유튜브 영상 링크 보내왔는데…그게 마지막 소식이었다니

그래서 더욱 마음에 남는 메시지가 하나 있다. 불과 두 달 전인 7월 4일 토요일, 김 화백은 내게 2026 밀라노-코르티나 ArtPara 결과보고서를 보내왔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AI 가르쳐주셔서 잘 활용하고 있네요. 늘 소식을 드리고 싶은 분이십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유튜브 영상 링크도 하나 보내왔다. 그때만 해도 이것이 그가 내게 보내오는 마지막 소식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늘 소식을 드리고 싶은 분이십니다.” 지금 다시 읽으니 그 한 줄에서 눈길이 오래 머문다. 사람의 마지막 인사는 대개 마지막인 줄 모르고 건네진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오래 남는다.

그는 새로운 기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AI를 알려주었더니 직접 써보고, 자신이 해낸 일을 보고서로 만들어 보내고, 영상 링크까지 챙겨 보냈다. 예순아홉의 화가는 마지막까지 배우고 있었고, 일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사람과 연결되고 싶어 했다.

지난해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겨울해바라기’가 있다. 2025년 그의 작품 ‘웃음’은 고등학교 미술교과서 감상과 비평 영역에 수록됐고 작품은 파리 OECD 본부에도 소장됐다. 2015년 뉴욕 유엔본부에서 시작해 세계를 돈 그의 그림은 이제 다음 세대가 교실에서 바라보는 작품이 되었다. 개인전 42회, 기획전 26회. 2014년 한국미술상, 2015년 장애인 인권상, 2020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상도 받았다.

하지만 숫자로 김근태를 기억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에게 더 어울리는 기록은 따로 있다. 1980년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 자신만 살아왔다는 죄책감을 수십 년 품었던 사람, 한쪽 눈과 한쪽 귀의 장애를 얻고도 세상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사람, 지적장애 아이들을 만나 자신의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은 사람, 그 아이들을 들꽃과 별로 그린 사람, 그 그림을 뉴욕 유엔본부와 베를린, 제네바, 파리, 리우, 평창으로 데려간 사람,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는 자신이 아니라 세계의 발달장애 화가들을 무대에 세운 사람. 그것이 김근태다.

김근태 화백과 아이의 파안대소

“나는 한쪽 눈을 잃었지만 당신은 잃지 않았소”

2020년 5·18 40주년, 김근태는 다시 광주로 돌아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오월, 별이 된 들꽃’ 특별기획전이었다. 지적장애인을 그린 대작들과 함께 5월 영령을 기리는 토우 1000인상과 한지 조형 1000인상을 선보였다. 모두 2000명의 형상이었다. 스물세 살에 살아서 빠져나온 그 자리에 예순을 넘긴 화가가 다시 돌아와 먼저 간 사람들을 불러낸 것이다.

그가 남긴 말이 있다. “나는 한쪽 눈을 잃었지만 당신은 잃지 않았소.” 살아남은 사람의 죄책감은 오래갔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김근태 화백, 당신은 살아남아 미안해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해낸 사람이었습니다. 광주의 상처를 그림으로 기억했고, 장애를 존엄으로 바꾸었으며, 세상이 잘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을 세계의 한가운데 세웠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수많은 얼굴과 그림이 있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유엔과 유네스코와 패럴림픽의 공간에 서지 못했을 수많은 ‘들꽃’과 ‘별’이 있습니다.”

지난겨울 김근태의 해바라기는 추운 계절에도 빛을 향해 서 있었다. 도가헌미술관은 그 전시를 가리켜 “어둠 속에서도 빛을 피워낸 인간의 예술에 대한 헌사”라고 했다. 그 말을 이제 김근태 자신에게 돌려주고 싶다. 그의 인생은 어둠이 없었던 삶이 아니다. 어둠을 지나 빛을 향해 선 삶이었다. 상처가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바라볼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겨울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겨울 속에서도 해바라기를 피운 사람이었다.

7월 4일 그가 보내온 마지막 인사를 다시 읽는다. “늘 소식을 드리고 싶은 분이십니다.” 내가 과연 그렇게 살고 있나, 부끄럽다.

김 화백, 이제 당신이 직접 보내오는 소식은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남긴 아이들의 웃음과 들꽃과 별, 그리고 겨울해바라기가 오래도록 소식을 전해올 것입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살아남은 것을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평생 그랬듯, 빛을 향해 서 계십시오.

아시아엔 발행인 이상기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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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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