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시드니 군함에서 떠올린 우리 해군…바다는 넓고, 그들의 공간은 좁다

시드니 항구의 Australian National Maritime Museum에 있는 구축함 HMAS Vampire <사진 황건>

나는 늘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일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육지의 복잡함에서 벗어나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도 조금은 넓어지지 않을까. 특히 해양대학을 나와 상선을 타던 친구를 볼 때면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지난 주 호주 시드니 방문 길에 Australian National Maritime Museum을 찾았다. 그곳에서 세 척의 배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구축함 HMAS Vampire, 호주를 발견한 제임스 쿡 선장의 범선 HMB Endeavour, 그리고 잠수함 HMAS Onslow였다.

시드니 군함 화장실 <사진 황건>

처음 들어간 Vampire는 생각보다 좁았다. 군함이란 원래 사람의 편안함을 위해 만든 배가 아니겠지만, 실제로 안에 들어가 보니 그 좁음이 몸으로 느껴졌다. 병사들이 사용하는 작은 화장실이 열 개 남짓 줄지어 있었고, 샤워칸도 서너 개 정도였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그들이 사는 배 안을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바다는 그렇게 넓은데, 그 바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공간은 이렇게 좁았다.

군함 안 수병용 샤워실 <사진 황건>

Endeavour에서는 또 다른 좁음을 만났다. 쿡 선장이 태평양을 항해했던 배였다. 배 앞쪽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른 모습의 선수상(figurehead)이 있었다. 남성의 얼굴이었다. 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거의 사다리처럼 가팔랐다. 몸을 뒤로 돌려 한 계단씩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그 앞에서 한 할머니가 멈춰 섰다. “I’m not going down.” 그녀는 더 이상 내려가기를 포기했다. 그 짧은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나는 내려갔다. 뒤로 돌아서 몸을 낮추고, 밧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배의 역사를 보러 왔지만, 결국 배 안에서 만나는 것은 사람의 몸이었다.

잠수함 HMAS Onslow <사진 황건>

그리고 마지막으로 Onslow에 들어갔다. 잠수함은 더욱 달랐다. 앞쪽에는 네 개의 어뢰 발사관이 있었다. 같은 구획에는 탈출구와 탈출복도 있었다. 한쪽에는 카누도 있었다. 특수작전을 할 때 밤에 이 카누를 가지고 나간다고 했다. 어뢰를 쏘는 곳과 사람이 살아서 빠져나가기 위한 곳, 그리고 사람을 몰래 육지로 보내기 위한 것이 한 공간에 있었다.

잠수함 HMAS Onslow의 구획 사이를 연결하는 원형 수밀문. 승조원들은 좁은 해치를 몸을 낮춰 통과해야 한다. <사진 황건>

구획과 구획 사이를 지나갈 때는 둥근 문을 통과해야 했다. 나는 위쪽의 홈을 손으로 잡고 다리를 먼저 밀어 넣은 뒤 몸을 미끄러뜨리듯 다음 공간으로 넘어갔다. 잠수함 안에서는 사람이 공간에 맞춰야 했다. 샤워칸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상선을 탔던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가 말했다. 자신이 탔던 상선에는 모두 28명의 승조원이 있었는데, 사관들은 개인 방을 사용했고 방마다 샤워장과 화장실이 있었다고 했다.

잠수함 HMAS Onslow 내부에 비치된 비상탈출복. 사고 발생 시 승조원이 잠수함을 탈출할 때 사용하는 장비다. <사진 황건>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군함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상선과 군함은 목적부터 다르다. 상선은 사람과 물건을 바다 건너 운반한다. 군함은 바다를 지킨다. 상선의 선원도 긴 항해와 고된 생활을 견디지만, 군함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에게는 편안함보다 임무가 먼저일 것이다.

나는 그제야 오늘 내가 본 좁은 화장실과 몇 개뿐인 샤워실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배는 1956년에 태어났다. 나보다 한 살 먼저 태어난 배였다. 나는 그 안에서 70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배의 흔적을 보면서, 문득 대한민국의 젊은 해군 장병들을 생각했다.

동해와 진해, 평택의 해군기지에서, 그리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와 함정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수도권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잠을 자고, 가족과 식사를 하고, 일상의 편리함을 누리는 동안 그들은 바다 가까이에서 근무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들을 생각해 왔다. 오늘은 그 생각이 배 안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바다는 넓다. 하지만 바다를 지키는 사람들의 생활공간은 좁다.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바다는 아름다운 풍경이기 전에 지켜야 할 곳이다.

시드니 Australian National Maritime Museum에 복원 전시된 제임스 쿡 선장의 범선 HMB Endeavour의 돛대와 삭구. 복잡하게 얽힌 밧줄과 장비가 당시 범선 항해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황건>

배에서 내려 하이드파크로 갔다. 그곳에 쿡 선장의 동상이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망원경을 들고 있었다. 망원경은 한 손에 들려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더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나는 그 동상을 바라보면서 우리 바다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바다에서 근무하는 대한민국 해군 장병들을 생각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그래서 한때는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오늘 배 안으로 들어가 보고 알았다. 바다를 누리는 사람과 바다를 지키는 사람은 같지 않다는 것을. 누군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유를 느끼지만, 누군가는 그 바다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조금씩 내려놓는다.

오늘 밤 나는 시드니의 바다를 바라본다. 그리고 먼 곳의 우리 바다를 생각한다. 우리가 평온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바다의 뒤편에 해군 장병의 하루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문득 귓가에 떠오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 글을 썼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잠수함 HMAS Onslow의 어뢰실. 어뢰 발사관과 각종 압력계·배관이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사진 황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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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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