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지키는 괴물은 얼마나 커야 하는가.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 질문에 도달한다. 평화를 유지하려면 국가는 강해야 한다. 그런데 얼마나 강해야 하는가. 홉스의 답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급진적이다. 그는 정치공동체에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강력한 주권이 필요하다고 본다. 주권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서로 충돌해서도 안 된다. 공동체 안에는 결국 모든 구성원이 따를 수밖에 없는 최종적인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홉스는 이렇게까지 강한 국가를 원했을까.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폭군 한 사람보다 내전과 무정부 상태였다. 홉스가 살았던 영국에서는 왕과 의회가 충돌했고 종교 갈등도 심했다. 결국 내전까지 벌어졌다. 왕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의회는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다. 종교 집단들도 각자의 신앙과 해석을 내세웠다. 홉스가 보기에 문제는 단순히 의견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서로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판단을 최종적인 것으로 주장하는 순간 공동체가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홉스는 주권은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왕이 주권자가 될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모인 합의체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홉스는 오늘날 민주주의와 크게 달라진다. 우리는 입법·행정·사법의 권력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홉스에게 서로 독립된 권력이 최종적인 결정권을 나누어 갖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이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권력이 충돌하면 결국 “누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가”라는 문제가 다시 생기기 때문이다. 홉스에게 국가는 결정하고 집행할 힘을 가져야 한다. 법을 만들고 그것을 집행하고, 필요하면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충분히 강해야 사람들이 자연상태의 불안과 폭력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리바이어던의 역설이 생긴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국가가 우리보다 훨씬 강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리바이어던》의 표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거대한 왕의 몸을 자세히 보면 수많은 작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는 개인들이 모여 만든 존재다. 그런데 개인들의 힘이 하나의 주권 아래 모이는 순간 국가라는 거대한 힘이 탄생한다. 국가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보다 강하다. 홉스가 흥미로운 것은 이 지점이다.
그는 강력한 주권을 주장하지만 국가를 왕의 신성한 혈통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국가는 인간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다. 개인들의 상호 계약과 동의를 통해 만들어진다. 다만 한 번 만들어진 국가는 개인보다 훨씬 강한 권력을 갖는다. 약한 국가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한 국가가 반드시 좋은 국가인 것은 아니다. 국가가 법을 집행할 강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국가의 권력이 아무런 한계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다른 이야기다. 아마 현대 민주주의가 홉스 이후에 고민한 것도 바로 이 문제일 것이다. 국가가 필요하다면, 그 강한 국가를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
한국의 헌정질서도 이 문제 위에 서 있다. 대통령에게 상당한 권한을 주면서도 국회와 법원, 헌법기관이 서로 견제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때로는 이 때문에 정치가 너무 복잡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의 권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결국 국가에는 두 가지 위험이 있는 것 같다. 너무 약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너무 강하면 아무도 막지 못한다. 강하지만 통제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드는 것. 현대 민주주의가 풀어야 할 어려운 문제다.

이 지점에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떠올려볼 수 있다. 테베의 왕 크레온은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왕의 명령보다 더 높은 도덕적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크레온에게 안티고네는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안티고네에게 부당한 국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정의를 저버리는 일이다. <안티고네>는 오래된 정치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국가의 법과 개인의 양심이 충돌할 때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은 홉스와 묘하게 연결된다. 홉스는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최종적인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최종 권위를 가진 국가도 잘못된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가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서 국가의 모든 명령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여기서 홉스 다음의 정치철학이 시작된다. 홉스는 국가가 왜 필요한가를 설명했다. 이제 존 로크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 국가의 권력에는 한계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국가를 만드는 문제에서 국가를 제한하는 문제로. <리바이어던>에서 <통치론>으로 넘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