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전사·실종 호주군 340명의 이름…그리고 한 젊은 병사의 눈망울

참으로 긴 하루였다. 어제 멜버른에서 열린 학회에서 내 발표가 끝난 뒤,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주군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기차를 타고, 트램을 타고, 버스를 타고, 때로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려 다시 길을 물었다. 그렇게 찾아간 첫 번째 장소가 Footscray의 한국전쟁기념비였다.

넓은 풀밭 위에 두 줄의 긴 기념벽이 길처럼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 두 벽 사이를 걸어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바깥의 한 벽에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호주군 34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계급도 없이 ABC 순서로 이름만 나란히 적혀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남은 것은 계급이 아니라 이름이었다.

다른 벽은 은빛 철판으로 되어 있었다. 작은 구멍을 촘촘히 뚫어 그 사이로 병사들의 형상이 보이게 만들었다. 그 구멍에는 꽃양귀비(poppy)를 꽂을 수 있었고, 실제로 여러 송이의 붉은 꽃이 꽂혀 있었다.
그 순간 부산 UN기념공원에서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한국전쟁에서 숨진 호주군 340명의 이름을 수놓은 퀼트가 있었다. 멜버른에서는 그 이름들이 철판에 새겨져 있었고, 부산에서는 천 위에 수놓아 있었다. 재료는 달랐지만 기억하는 방법은 같았다. 죽은 사람을 숫자로 남기지 않고 이름으로 남기는 것.

두 벽 사이를 몇 번이나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바닥에 떨어진 꽃양귀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주워 병사의 형상을 만든 구멍 하나에 다시 꽂았다. 누구의 자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꽃을 꽂는 순간만큼은 340명 가운데 한 사람을 위해 꽃을 놓는 마음이었다.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St Paul’s Cathedral에 들렀다. 성당 양쪽 벽에는 여러 전쟁을 기억하는 기념판이 붙어 있었다. 그 가운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동판이 나란히 있었다. 한국전쟁은 이제 호주가 기억하는 여러 전쟁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었다.

다시 트램을 타고 몇 정거장을 가서 Shrine of Remembrance에 내렸다. 높은 기념관이 눈앞에 서 있었다. 입구의 왼쪽 돌기둥에는 Korean War 1950–1954라고 새겨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이 지역 출신 병사들의 전쟁사가 이어지고 있었고, 그 가운데 한국전쟁도 하나의 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육군과 해군, 공군의 참전 모습이 전시되어 있었고, 한국전쟁에서 노획한 중국군의 훈장도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 장의 사진 앞에 오래 서 있었다. 한국전쟁의 참호에서 다섯 명의 젊은 호주 병사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모두 잘생겼다. 아직 얼굴에 젊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군복을 입고 참호 안에 서 있었지만, 사진 속 그들은 영웅이라기보다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젊은이처럼 보였다.
그런데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눈이 내 눈에 들어왔다. 조금 겁먹은 눈이었다. 그 눈을 보는 순간, 340이라는 숫자가 다시 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전쟁 사진에는 흔히 용감한 얼굴이 남는다. 그러나 그 젊은이의 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아마 그는 무서웠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 있었다. 한국의 참호 속에.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70여 년 뒤 자신의 고향을 방문한 한 한국인 의사가 그 사진 앞에 서서 자신의 눈을 오래 바라보게 될 줄은.
그날 저녁 학회가 끝난 뒤 한국에서 온 해부학자들이 함께 모였다. 한 사람이 그레이트 오션 로드 이야기를 꺼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3000명의 호주 병사들이 일자리를 얻어 그 길을 건설했고, 동시에 전쟁에서 죽은 전우들을 기리는 기념물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내가 걸었던 길도 하나의 기억의 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Footscray에서 340명의 이름을 만났고, St Paul’s에서 그 전쟁이 호주의 기억 속에 들어와 있음을 보았으며, Shrine에서는 5명의 젊은 병사를 만났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의 눈을 보았다.
우리는 지금 K-pop을 비롯해 한국의 문화가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를 보내고 나니 문득 조심스러워진다. 우리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30명만 전사해도 우리는 큰 슬픔에 빠질 것이다. 그런데 70여 년 전 호주의 젊은이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까지 와서 싸웠고, 그곳에서 340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그들에게 한국은 멀고 낯선 나라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왔다. 그리고 죽었다.
오늘 Footscray에서 나는 떨어진 꽃양귀비 하나를 주워 다시 꽂았다. Shrine에서는 그 젊은이들의 사진을 보았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조금 겁먹은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눈을 잊고 싶지 않다.
전쟁을 기억한다는 것은 숫자를 기억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름을 기억하고, 얼굴을 기억하고, 그 얼굴에 남아 있던 두려움까지 기억하는 것일 것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Shrine의 기념품 가게에서 산 “The Australian Army”라는 글자가 금색으로 수놓인 비니를 쓰고 있었다. 오늘 종일 한국전쟁의 흔적을 찾아다닌 끝에, 나는 호주군의 모자를 쓰고 멜버른의 밤거리를 걸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모자 덕분에 머리는 시렵지 않았다.
문득 생각했다. 한국전에 참전한 그들도 참호 속에서 이런 추위를 견뎠겠지. 철모 안의 모자가 그 추위를 조금은 막아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340명 가운데 한 사람의 눈망울이 아직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