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2월, 중국 상하이(上海)시 공회당 그랜드홀, 세모를 앞두고 상하이 거주 외국인들의 음악회가 열렸다. 서양 각국과 러시아, 일본인의 전통음악과 연주가 무대를 빛내며 향수를 달래고 있었다.
한국(조선)교민회의 순서가 다가왔다. 상해의 조선인은 망명한 처지에 호구지책이 힘든 형편이었다. 음악 무용을 배우거나 악기를 익힐 여유가 없었다. 과연 조선인이 출연할 수 있을 것인가? 탁월한 외국인 출연자와 비교해 기량이 어떨 것인가?

기대와 걱정 속에 연한 분홍색 저고리에 옥색 치마를 두르고, 머리를 쪽 집은 키가 늘씬한 여인이 들어섰다. 그녀는 가야금을 들고 무대로 사뿐사뿐 나왔다. 조용히 큰 숨을 내쉬더니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가야금을 타며, 조선의 민요를 천상의 소리인 듯 처연하게 불러냈다. 숨죽이고 귀 기울이는 청중 앞에서 두 곡을 끝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바로 기립해 맵시 있는 몸매로 음악에 맞춰 조선 전통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인의 어깨와 팔 그리고 버선 발이 신 들린 듯 플로어를 날아다니며 고요히 미끄러져 나갔다. 춤이 끝나고 그녀는 조용히 한국식 반절로 우아하게 고개와 허리를 숙였다. 와! 하고 박수가 우레처럼 쏟어져 나왔다. 서양인과 중국인들로부터 앵콜과 환호가 장내에 터져 올랐다. 상해 교민회 간부들과 임시정부 요원들 모두 눈물을 글썽였다. 조선 여인이 홀로 가야금 연주와 노래, 춤의 삼중주를 해낸 것이다.
그녀의 정체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녀의 발자취는 아무르 북만주 벌판에도 흔적을 깊이 남기고 있었다. 하얼빈에서 이제 그녀를 따라 역사여행을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현계옥, 사랑을 쫓아 조선을 탈출한 예술인, 1년 전만 해도 기생이라 불리는 운명을 타고난 파란만장한 ‘근대의 여인’이었다.

현계옥은 1896년 경남 밀양에서 동래부 소속 악공(향악 및 당악의 연주자)인 아버지 현씨의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악공은 관아에 소속된 음악인으로 각종 행사시 음악을 연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천민 신분이었다. 아버지는 현씨 양반가의 서출로 동래부 소속 악공이었고, 어머니는 관청에 소속된 관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사민평등의 세상이 다가왔다. 이어서 1896년 전 근대적인 관기제도가 폐지되었다. 시대는 변하고 있었지만 천민 신분인 그들에게는 다른 직업을 선택할 여건이 있을 수 없었다. 악공에 대한 세상의 깊은 편견도 나아질 수 없었다.
아버지 현씨는 자식들을 데리고 경북 달성군으로 이주한다. 딸 현계옥은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가야금 연주, 노래와 춤이 평생의 업이 되었다. 근대사회가 밝아오며 조선사회 전체에 봉건적 폐습과 낡은 도덕의 고리가 근대의 자유 평등의 이념과 충돌하며 서서히 파열되고 있었다.
한일합병 후 기생들도 권익보호와 생업을 위해 모임을 만들고 ‘기생조합’으로 출발하게 된다. 그녀는 17세(1912년)에 ‘대구기생조합(경상감영 출신 관기들의 노동조합, 달성권번으로 개칭)’의 동기(어린 기생)로 입회하게 된다.
1913년, 그녀의 운명에 빠른 변주곡이 몰려온다. 중국에서 학업 중이던 대구 출신 현정건(1893-1932, 소설가 현진건의 형)이라는 유학생이 친구들과 함께 요정을 방문하며 그녀를 만나게 된다. 알고 보면 현정건은 부모가 강제한 결혼에 반항하며 삼일 만에 가출한 유부남(?)이었던 것이다. 선남선녀 현정건과 현계옥이 정인관계로 발전하고 열애하며 편지왕래를 하게 된다.

그녀는 달성권번에서 노래와 무(춤), 가야금 기악을 전문적으로 익혀 전문성이 인정되는 ‘예기(藝妓)’가 된다. 그녀는 부친으로부터 예술혼이 전수되어 민요와 전통무용 가야금 연주에 특출한 기량을 인정받았다. 그녀의 큰 키와 백옥 같은 피부, 뛰어난 미모는 예술적 기예와 더불어 그녀를 달성권번의 최고 예기로 꼽게 된다. 현계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일본어를 익히며 새로운 세계를 탐색했다. 가자! 새 세상 경성으로!
19세 때(1914년) 경성으로 이주하며 ‘다동기생조합'(대정권번으로 개칭, 평양 출신이 주도한 지방기생의 노조)에 소속하였다. 가야금, 창곡, 무용, 72가지 춤에 시원스러운 용모와 건장한 체구, 호쾌한 성격의 현계옥이었다. 그녀는 한시와 산수화도 그리며 경성 화류계의 스타였다. 그녀의 출연 무대는 명월관, 국일관, 식도원 무대와 단성사 극장이었다. 출연료도 최고액이었다. 가난의 고리도 끊어냈다. 스승 하규일부터 배운 직업관이 있었다. “노래와 춤은 팔아도 색(色)은 팔지 않는다”
현계옥은 ‘대정권번’의 굴레에서 벗어나, 남도 출신의 권익을 추구하며 ‘한남권번’이라는 독자적인 권번을 조직할 만큼 도전적이었다. 현계옥과 정칠성(정금죽)을 중심으로 기생들은 사회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참여하였다. 임진왜란의 의기 ‘논개’와 ‘계월향’의 사당 중수에 비녀와 가락지를 팔아 비용을 기부한다. 이로 인해 1917년 본정경찰서 (중부경찰서)의 조사를 받고, 불순행동 가담자로 일주일 구류처분을 받는다. 그들은 ‘사상기생’으로 불리기도 한다.
상해의 현정건과 이어지는 서신교환으로 사상교육과 의식화는 그녀를 독립혁명의 무대로 서서히 등장시킨다. 현정건은 그녀에게 중국 여자혁명결사대 ‘덩추진’의 모델을 암시했다. 1911년 손문이 주도한 신해혁명이 청조의 구체제를 무너뜨렸다. 신해혁명의 제2지도자 황흥(황싱1874년, 후난성 장사 출생)에게 애인이 있었다. ‘여자혁명결사대’의 지도자 ‘덩츄진(등추진)’이었다. 덩츄진은 천진기루 출신 기녀이며 혁명가였다. 현계옥은 덩츄진의 길이 자신의 소명임을 직감적으로 받아들인다. 조선독립과 혁명의 딸이 되는 것이었다.
1918년에는 승마에 취미를 가지고 황금정 승마구락부(구 훈련원, 을지로 5가)에 가입하여 남성 본위의 사고방식과 풍속에 도전한다. 경찰의 취제 단속으로 포기했지만 현계옥과 동료 기생 정칠성은 여성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선구적 도전자였다. 현계옥은 ‘여자 장자방'(한나라의 개국공신)이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강인하며 도전적이었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은 왕권에서 소외되며 미국유학과 해외대사를 지낸 반일적 인물이었다. 이강은 현계옥의 열렬 팬이자 후원자였다. 성북동 숲속 언덕의 별궁 성락원에 수시로 현계옥을 초청해 연회를 벌였다. 가야금과 창을 들으며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에 망국의 한을 달래는 것이었다. 1919년 일본 육사출신 장교 김경천과 지석규도 의친왕의 초청으로 주석에 동석하며 그녀와 교분을 갖게 된다.
1919년 2월 정인 현정건이 중국 길림에 근거를 둔 비밀결사의 단장으로 자금조달을 위해 입국했다가 경찰에 피검되었다. 조사 후 석방되어 현계옥과 해후하며 3월 출국 시 현계옥을 동행하여 중국으로 탈출하기로 모의한다.
현계옥에게 다시 도약의 기회가 찾아왔다. 경성의 좁은 화류계를 벗어나 대륙으로 진출해 진정한 혁명가의 길을 걷는 것이다. 보유한 집과 재산을 정리해 남동생 내외와 두 여동생을 대동하여 출국을 시도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녀를 오매불망 쫓아다니는 재산가의 아들을 유인하여 3천원(당시 1원은 현재가치 2만원 상당, 약 6천만원)을 확보해 망명 자금을 비축했다 한다.
1920년 3월, 경성에서 현계옥의 정체가 사라졌다. 현계옥이 연예단을 만들어 만주로 비밀 출국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국경 각지에 내린 수배령을 뚫고 현계옥 일행 5명이 안내인을 따라 조선을 탈출했다. 만주 단동현에서 봉천(심양), 장춘을 거쳐 길림에 도착했다. 별도로 출국한 현정건도 장춘을 거쳐 길림에서 현계옥과 합류하는데 성공하였다.

1920년 봄 현정건을 따라 상해로 이동하며 현정건의 정인으로 정착하려 했다. 그러나 대도시 상해의 교민사회도 봉건적 사상에 물들어 있었다. 기생 출신이라는 주변의 시기와 모함으로 혼인에 실패한다. 동성동본이라는 암초가 두 사람의 앞을 막고 있었다. 오히려 배정자와 같은 부류의 총독부 밀정으로 의심받는다.
모함과 실의 속에 현계옥은 1921년 1월 상해 음악회에 출연하고 각국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실마리를 풀게 된다. 그녀는 1922년 3월 초 상해 애국부인회가 개최한 대연주회에 출연하며 가무와 가야금 연주로 독립자금을 모금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이로써 현계옥은 상해 한인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물로 완전히 정착할 수 있었다. 현계옥은 현인근으로 개명하며 혁명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가히 초인적이었다. 중국어와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현정건은 상해임정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김원봉이 주도하는 의열단에 참여하게 된다. 현계옥도 1922년 의열단장 김원봉의 인정을 받아 입단하여 유일한 여성 의열단원이 된다. 그녀는 테러리스트로 폭탄제조법, 사격술을 연마하고, 헝가리인 폭탄 전문가 마자르를 도와 폭탄제조와 운반 역할을 담당한다.
1923년 종로경찰서를 폭파하는 테러공작으로 ‘폭탄 비밀 수송작전’이 전개된다. 현계옥은 마자르의 부인으로 위장하여 영어로 소통하며 상하이-톈진-단동 열차 이동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는 활약을 한다. 조선인 출신 경찰간부 황옥 경부(경감)가 개입된 사건이었다. 신의주-경성역-가회동 안전가옥까지 폭발물 뭉치와 권총을 국내로 밀반입하였으나 최종 단계에서 내부밀고로 실패한다.
1920년대 초부터 러시아 혁명의 기운이 중국대륙에 전파된다. 사회주의 이념이 상해와 독립운동 진영에 깊숙이 침투한다. 현계옥은 사회주의에 경도된 현정건을 따라 1924년 4월 ‘청년동맹회’ 창립에 가입하며 좌경노선으로 선회한다. 그녀는 1926년 3월 ‘여자해방’이라는 독립운동지를 간행하며, 여성의 억압과 차별 소외의 해방을 목표로 선구적 행보를 걷게 된다.
또 다시 대륙의 혁명정세는 급변하였다. 장개석의 국민혁명군은 1926년 7월 장쭤린(장작림)의 북양군벌을 진압하려 북벌전을 선포한다. 이 과정에서 어부지리의 공산당은 그 힘을 축적해 도시지역 상해까지 세력을 확장한다. 위기를 감지한 장개석의 국민혁명군은 국공합작을 포기하고, 반공 쿠데타로 선회하여 공산당 소탕에 나섰다. 항일과 권력장악, 혁명과 반공전선이 혼재하며 대륙의 정세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결과적으로 상해의 조선인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 세력은 급속히 위축되며, 1928년 현정건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된다. 두 번째 이별이었다.
현계옥은 상해에서 잠복하며 1931년 7월 혁명운동이 가능한 북만주로 탈출한다. 이후 4년 여간 북만주 장춘, 길림, 하얼빈의 송화강가에서 목격된다. 독립군 동지들을 음악과 연주로 위무하며 독립자금을 확보하는 혁명활동이었다.
1935년 이후에는 그 행적이 홀연히 사라진다. 하얼빈을 거쳐 시베리아로 망명하여 모스크바 공산대학 입학설과, 코민테른 동양비서부의 외몽골 공작원으로 울란바토르 잠입 활동설, 스탈린의 정치적탄압으로 체포 처형설이 유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된 현정건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1932년 6월 출옥한다. 그는 20년을 독수공방 수절한 부인 윤덕경의 가회동 자택에 병든 몸으로 귀가했다. 윤덕경은 20년 세월 동안 눈물 속에 수예를 배우며 조선수예의 으뜸이 되었다. 현정건은 옥고의 후유증으로 그해 12월 30일 40세로 운명한다.
해방이 되었어도 현계옥의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고비사막의 모래바람 속으로 날아가 대륙의 별이 된 것일까!

현계옥의 저항적 사랑과 근대적 혁명의식은 쉽게 잊히거나 침잠하지 않았다. 1931년 경성에서 발행되는 문예잡지 <삼천리> 17호에 ‘붉은 연애의 주인공들’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현정건과 현계옥”-의열단 핵심 요원과 기생출신 혁명가의 사랑과 투쟁”, “박헌영과 주세죽-조선공산당 핵심과 여성 해방운동가”, “김단야와 고명자-목숨을 걸고 사회주의 사상을 공유한 동지적 결합”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사랑과 혁명, 실패와 고통을 다룬 기사였다. 현계옥을 제1의 주인공으로 다루었다. 경성의 관심이 가장 큰 스타였다.

90여 년이 지난 2016년 9월 영화 <밀정>(THE AGE OF SHADOWS)이 감독 김지운의 손에서 제작되었다. 배우 송강호(황옥 경부역 ), 한지민(현계옥역), 공유(의열단 리더 김시진역)가 출연해 혁명가 현계옥의 삶과 활약이 조명된 영화였다. 7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었다. 사라진 스타와 상업주의가 흥행을 기록했다.
기생출신 혁명가이며 여성 해방운동가 현계옥, 식민주의와 봉건주의에 저항하는 사회주의자 현정건, 봉건시대의 희생자이며 선구자가 되는 법적 아내 윤덕경. 누가 누구를 탓하며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을까!
삼인의 운명에서 한국 근대사회가 탄생하는 산고의 아픔과 망국의 고통을 또다시 절감하게 된다. 우리는 하얼빈의 평원 너머로 사라진 여성 혁명가 근대의 여인 현계옥을 망연히 바라보며 역사 여정을 다시 밟는다.

하얼빈의 송화강가, 사라진 여인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