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돈의 전쟁과 인간①] 91세 노장군의 고백 “나는 살인자다”…그리고, 707대테러부대의 방아쇠 앞 1초
이 연재는 육군사관학교 15기 출신으로 특전사령관과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지낸 민병돈 예비역 육군 중장이 2026년 6월 6~8일 충북 영동의 한 펜션에서 황건 인하대 의대 명예교수·성형외과 전문의와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91세 원로 장군이 한국전쟁과 군 생활에서 직접 겪거나 가까이서 지켜본 장면을 구술의 생생함을 살려 정리했다. 오래전 기억에 따른 인명·계급·시기와 일부 정황에는 착오가 있을 수 있으며,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관한 평가는 구술자의 견해임을 밝혀둔다. <편집자>

내 고등학교 동창들이나 육사 동기·후배들 가운데도 내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국가보훈 당국에서 발급한 참전 증명서도 있다. 자랑스럽게 말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내 입으로 참전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전쟁 중 겪은 일을 떠올리면 자랑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밀려왔기 때문이다.
전투 중 적군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은 전쟁이다. 총탄이 오가는 상황에서 상대를 사살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다. 국가의 명령을 받고 전선에 나간 군인이 적과 싸우는 것은 전투행위다. 그러나 전투가 사실상 끝난 뒤,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르다. 나는 그것을 적을 사살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살인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그 기억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전투 중 총을 쏘았을 때도 내 총탄에 사람이 쓰러졌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쏜 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의 총에 맞았겠지.”
그렇게 스스로 변명했다. 전쟁터에서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총을 쏜다. 누가 쏜 총탄에 상대가 쓰러졌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나는 그 불확실성 뒤에 숨어 마음의 짐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던 사람을 직접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던 일은 그렇게 변명할 수 없었다. 누가 쏜 총탄인지 따질 여지가 없었다. 내가 쏘았고, 그 사람이 쓰러졌다. 그 기억은 평생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젊었을 때는 살아가는 일에 쫓겨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둘 수 있었지만,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때 죽은 사람의 얼굴과 삶을 생각하게 됐다. “그 사람에게도 부모가 있었을 텐데.”
그의 부모도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무사히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내가 죽였다. 나는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다.
이 때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은 내게 그 이야기를 이전에도 한두 번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 괴롭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날 처음 들었다고 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나는 적을 사살한 것이 아니라 살인을 한 것이다. 내가 살인자다.”
전쟁은 사람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 싸우고,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인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이름이 모든 죽음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무기를 내려놓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상대를 죽이는 것은 전투가 아니다. 당시의 나도 그것을 알았어야 했다.
나는 군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특전사령관과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지냈고, 수많은 부하를 지휘했다. 그러나 계급과 경력이 그날의 잘못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전쟁 영웅이라는 말도 한 사람의 죽음을 되돌릴 수 없다.
전쟁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승리와 패배, 작전과 전과, 영웅과 훈장을 먼저 말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죽인 사람과 죽은 사람, 그리고 평생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91세가 된 지금, 나는 한국전쟁 참전 사실을 자랑하기보다 그때 죽은 한 사람을 먼저 떠올린다. 그에게도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부모와 형제, 기다리는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그러나 평생 잊지 못한 채 깨닫고 있다.
그런 내가 훗날 707대테러부대를 창설하면서 다시 방아쇠 앞의 인간을 생각하게 됐다. 이번에는 내가 총을 쏘는 문제가 아니라, 부하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707대테러부대를 만들 때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장비나 편제가 아니었다. 사람을 실제로 향해 총을 쏠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특수부대원들은 거칠고 강하게 훈련받는다. 겉으로 보면 두려움이 없을 것 같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보면 선량한 젊은이들이다. 험한 훈련을 견뎠다고 해서 실제로 사람을 죽여본 것은 아니다.
내 경험으로는 사람을 죽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처음 사람을 향해 총을 쏠 때 머뭇거리게 된다. 그 머뭇거림은 길지 않다. 불과 1초나 2초다. 그러나 대테러 작전에서는 그 1초가 자신의 목숨을 잃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테러리스트 가운데는 이미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고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이들도 있다. 반면 우리 대원들은 아무리 훈련을 많이 받았어도 실제 상황에서는 처음 사람을 겨누게 될 수 있다. 나는 그 차이가 치명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가 1972년 뮌헨올림픽 참사였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잡았다. 독일 당국은 테러범들이 인질과 함께 비행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저격수들을 배치해 진압하려 했다.
저격수들은 신호가 떨어지면 동시에 사격해 테러범들을 제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작전은 실패했다. 인질 11명과 경찰관 1명, 테러범 5명이 숨졌다.
내가 관련 자료를 연구하면서 특히 주목한 것은 한 경찰 저격수의 머뭇거림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자신이 그것을 빼앗아도 되는가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테러범들이 눈앞을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 1초 남짓한 지연으로 동시 사격이 깨졌고, 테러범이 대응할 시간을 얻어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사건을 보며 대테러 작전은 일반 전투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저격수의 망설임에 관한 이야기는 당시 내가 접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억하는 내용이다. 뮌헨올림픽 구출작전의 실패에는 준비와 지휘, 병력 배치 등 여러 문제가 있었으며, 한 사람의 사격 지연만으로 참사의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
전쟁터에서는 여러 병력이 서로 총을 쏜다. 누가 쏜 총탄에 누가 쓰러졌는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테러 작전에서는 몇 미터 앞의 특정 인물을 직접 겨누어야 한다. 상대의 얼굴이 보인다. 내가 방아쇠를 당기면 그 사람이 쓰러진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그 순간 아무리 용감한 대원이라도 인간적인 주저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비겁함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본능적인 망설임이다. 하지만 인질의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에는 그 망설임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대원들이 실제 상황에서 처음 겪게 될 심리적 충격에 대비하도록 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람을 놓고 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것이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사람을 죽이는 데 익숙한 군인을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테러범이 인질의 생명을 위협하고, 대원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최악의 순간을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대테러부대의 임무는 사람을 죽이는 데 있지 않다. 인질과 시민을 살리는 데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테러범을 즉시 제압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그때 대원이 자신의 두려움과 도덕적 갈등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다면 작전 전체가 실패할 수 있다.
나는 특수부대원들의 강인함보다 그들이 본래 선량한 젊은이라는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인간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임무를 수행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사람을 죽이는 데 무감각해지지 않으면서도, 무고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방아쇠는 당길 수 있게 할 것인가.
707부대 창설 당시 내가 붙들고 있던 가장 어려운 질문은 바로 그것이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전쟁에서 내가 겪은 일과 707부대를 창설하며 고민했던 문제는 서로 다른 이야기이면서도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어떤 상황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 군인은 명령과 임무를 수행하면서 어디까지 자신의 양심을 지켜야 하는가.
한국전쟁에서 나는 방아쇠를 당긴 뒤 평생 지울 수 없는 기억을 갖게 됐다. 707부대를 만들 때는 부하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의 망설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했다.
한쪽에는 너무 쉽게 당겨서는 안 되는 방아쇠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무고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지체해서는 안 되는 방아쇠가 있었다.
두 상황 모두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었다. 군인의 용기란 단순히 두려움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능력이 아닐 것이다. 방아쇠를 당겨야 할 순간과 결코 당겨서는 안 되는 순간을 구분하고, 그 선택에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일 것이다.
91세가 된 지금도 나는 그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총을 쏘는 순간은 짧다. 그러나 그 순간에 대한 책임은 한평생 이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