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시드니를 여행하던 중이었다. 뉴사우스웨일스주립미술관(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Avatāra, Viṣṇu’였다. 오른편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며 전시장을 찾아 걸었다. 그러다 바로 옆에 있는 유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뜻밖의 장면을 만났다. 바닥에 수많은 청바지가 놓여 있었다. 멀리서 보니 이상했다. 사람들이 입던 청바지를 이어 붙여 만든 커다란 공간이었다. 내 첫인상은 이랬다. ‘아, battlefield(전쟁터) 같다.’ 전쟁터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 근처에는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고, 한 할머니가 앉아 작품 설명을 읽고 있었다. 나도 설명을 읽었다. 그런데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어가 누워도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왜 안 들어가세요?”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신발 벗고 들어갔다가 다시 신기가 싫어서요.” 그 말이 재미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저는 이곳이 전쟁터 같아서 들어가 눕기가 좀 꺼려지네요.” 그리고 원래 목적지인 ‘Avatāra, Viṣṇu’를 보러 갔다.
비슈누를 보고 다시 돌아왔을 때, 아까 보았던 청바지 작품의 풍경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젊은 남자 한 명이 반대편에 편안하게 누워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한번 누워보고 싶어졌다.
신발을 벗고 청바지 사이로 들어갔다. 청바지는 두 개씩 마주 보도록 놓여 있었고, 그 안은 스펀지로 채워져 있었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누워 있었다. 그리고 곧 일어났다.
뒤이어 젊은 여자 두 명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조금 놀랐다. 두 사람은 신발을 벗지도 않았다. 그냥 신발을 신은 채 청바지 사이로 들어가 누웠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때 문득 오래전의 내 청바지가 생각났다. 젊었을 때 나는 청바지를 좋아했다. 청바지를 입고 거리를 다녔고, 몸에 잘 맞는 청바지를 고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몸이 달라졌다. 언젠가부터 예전에 입던 청바지가 맞지 않았다. 옷장에 남아 있던 청바지 몇 벌은 결국 의류수거함에 넣었다. 그때는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드니에서 나는 다시 청바지를 만났다. 이번에는 입는 것이 아니었다. 내 몸을 감싸던 청바지가 다른 사람의 몸을 받아주는 자리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전쟁터처럼 보였다. 쓰러진 사람들처럼 보였던 청바지들이 이제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누워 쉬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버려진 옷이 버려진 채 끝난 것이 아니었다. 형태를 바꾸어 다시 사람의 몸을 받아주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잠시 누워보았다. 젊었을 때는 청바지를 입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청바지를 버렸다. 그리고 시드니에서는 청바지 위에 누웠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날 찾아가려던 것은 비슈누였다. 그런데 정작 길에서 만난 것은 오래전의 나였다. 아마 이것이 여행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보려고 길을 나선다. 안내판을 따라 걷고, 미리 정해둔 전시를 찾아간다. 그러나 여행은 때때로 우리가 찾지 않았던 것을 만나게 한다. 그리고 그 우연한 만남이 오히려 오래 남는다.
나는 비슈누를 보러 갔다가 청바지 위에 누워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서 한때 청바지를 좋아했던 젊은 나를 잠시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