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계엄 책임이 왜 육사 폐교로 이어져야 하나…민병돈 장군의 오래된 질문

1955년 10월 26일 자 전우신문(戰友新聞) 지면. ‘장렬! 의거 9대위의 산화’라는 제목으로 군인의 희생과 정신을 기리고 있다. 국가와 군을 위해 헌신한 장교들의 역사를 기록한 이 신문은 12·3 비상계엄 이후 육사의 존폐와 군인의 명예, 책임을 둘러싼 오늘의 논쟁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12·3 비상계엄 이후 육군사관학교의 존폐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계엄에 관여한 군 지휘관들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육사 출신 중심의 군 인사구조와 조직문화가 비판받았고,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을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반영됐다. 정부는 사관학교 통합의 근거로 미래전 대비와 합동작전 능력 강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육체계 개편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군별 전문성과 교육 전통의 약화, 기존 사관학교 폐교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다. 통합 논의 자체는 계엄 이전부터 있었지만, 12·3 이후 군 개혁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됐다. 이 논쟁을 지켜보며 지난 6월 충북 영동에서 만난 민병돈 예비역 중장(육사 15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육사교장을 지낸 그는 6월 6~8일 황건 인하대 명예교수와 필자에게 오래전 방송 출연 경험을 들려줬다. 10년 전 육사에서 남녀 생도 사이의 성 관련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방송사는 평소 바른말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전직 육사교장 민병돈에게 출연을 요청했다. 학교를 강하게 비판하는 발언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 장군의 입장은 달랐다. 잘못한 생도에게는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고, 학교의 관리와 교육에 문제가 있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도 당연한 과제다. 다만 한 사람의 잘못을 이유로 육사 전체를 부도덕한 조직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의 사례를 들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군사교육기관에서도 생도들의 규율 위반과 불미스러운 사건은 발생한다. 그렇다고 그 학교의 모든 생도를 같은 잣대로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취지였다.

민 장군이 강조한 것은 잘못을 덮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개인의 책임, 지휘·감독의 책임, 조직문화의 문제를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조직 전체의 명예를 부정하는 것 역시 공정한 평가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이 이야기는 오늘의 육사 통합·폐교 논쟁에도 질문을 던진다.

12·3 비상계엄에 관여한 군 지휘관들의 행위는 법적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행위가 있었다면 개인뿐 아니라 관련 지휘체계와 조직문화의 책임도 따져야 한다.

그러나 특정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관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학교의 모든 졸업생과 생도에게 같은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동시에 개인의 잘못이라는 이유만으로 육사 중심의 인사 관행이나 군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사관학교 통합 문제 역시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다. 육·해·공군 장교를 함께 교육하는 체계가 합동작전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는 검토할 가치가 있다. 반면 각 군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전문교육과 전통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통합에 따른 비용과 부작용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육사 출신 중심의 군 인사구조를 개선하는 일과 육사라는 교육기관을 폐교하는 일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기존 사관학교를 유지하면서도 인사와 교육체계를 개혁할 수 있고, 사관학교를 통합하더라도 군의 정치적 중립과 전문성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육사를 남기느냐 없애느냐에 앞서 어떤 장교를 길러낼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헌법에 충성하고 국민을 보호하며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군인, 현대전 수행 능력과 올바른 지휘철학을 갖춘 장교를 양성하는 것이 군사교육의 본질이어야 한다.

91세 노장 민병돈의 구술은 최근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찬반 의견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오래전 방송에서 강조했던 원칙은 오늘의 논쟁을 돌아보게 한다. 잘못은 엄정하게 다루되, 사람과 조직에 대한 평가는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엄의 책임을 묻는 일과 육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 두 과제는 연결돼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책임은 정확히 규명하고, 제도의 미래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군 개혁의 출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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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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