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정부의 채무조정과 채무 탕감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과의 형평성, 그리고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 오래된 논쟁 앞에서 문득 2천3백 년 전 전국시대 설(薛) 땅이 떠올랐다. 자, 이제 풍환과 맹상군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오늘의 논쟁은 잠시 접어 두고, 설 땅으로 가서 그들에게 한 수 배워 오도록 하자.
설은 맹상군의 봉읍이었다. 삼천 명의 식객을 거느린 맹상군은 설 땅 백성들에게 돈을 꾸어 주었는데, 일 년이 지나도록 이자조차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식객 풍환에게 채권을 회수하라는 임무를 맡긴다.
장부를 들고 떠난 풍환은 뜻밖의 일을 한다. 그는 먼저 술과 소를 마련해 잔치를 베풀고, 돈을 빌린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장부부터 펼치지 않았다. 먼저 사람을 만났다. 얼굴을 보고, 사정을 듣고, 삶의 형편을 살폈다.
그는 차용증서와 사람들의 형편을 하나하나 대조하였다. 아직 갚을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원금을 상환할 기한을 정해 주었다. 그러나 가난하여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증서는 따로 골라 그 자리에서 불살라 버렸다.
풍환은 알고 있었다. 상환 능력을 완전히 잃은 사람을 아무리 독촉해도 빚은 회수되지 않는다. 열 해를 기다려도 이자만 불어날 뿐이고, 성급히 몰아붙이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달아난다. 결국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한다.
그는 돈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신뢰를 얻고 있었다.
맹상군은 크게 노했다. 거두어 오라던 돈은 없고 차용증서만 태워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풍환은 담담히 말했다. “저는 주군을 위해 의(義)를 사 왔습니다.” 이른바 시의(市義)이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의리를 돈을 포기함으로써 얻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것은 풍환이 아무에게나 빚을 탕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먼저 사람들의 형편을 살폈다.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물었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었다. 무차별적인 탕감이 아니라, 사람을 살피는 분별이 먼저였다.
오늘날 정부의 채무조정 정책도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다. 회생이 불가능한 채무를 끝없이 끌고 가는 것이 과연 사회 전체에 이로운가. 반대로 쉽게 탕감을 반복하면 성실하게 책임을 다한 사람들에게 또 다른 불공정이 되지는 않는가.
풍환은 오늘의 정책에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전국시대의 이야기를 현대 사회에 그대로 옮겨 놓을 수도 없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을 남겼다. 장부의 숫자보다 사람의 형편을 먼저 보라는 것이다.
의사인 나는 이 대목에서 의료 현장을 떠올린다. 검사 수치만으로는 환자를 다 알 수 없고, 영상 사진만으로는 삶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삶을 이해할 때 비로소 올바른 판단에 가까워질 수 있다. 풍환이 설 땅에서 가장 먼저 펼친 것은 장부가 아니라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사마천이 이 이야기를 <사기>에 남기고 2천 년이 넘도록 전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장부는 빚의 액수를 기록하지만, 사람의 사정은 기록하지 못한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숫자를 들여다본다. 경제지표와 통계, 재정과 채권을 계산한다. 그러나 때로는 숫자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는 지혜가 더 큰 가치를 남긴다.
2천3백 년 전 설 땅에서 풍환이 불태운 것은 차용증서 몇 장이 아니었다. 그는 돈보다 신뢰가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빚을 탕감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앞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지혜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