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총알은 못 막아도, 마음은 지킨 영국군 병영 노래

AI 생성 이미지

한국전쟁 영국군 병영민요, 전쟁 속 인간다움 지켜내다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영국군의 한국전쟁 참전 기록을 둘러보았다. 전시는 예상보다 훨씬 자세했다. 참전 부대의 이동 경로와 전투, 희생자들의 이름까지 터치스크린으로 하나씩 살펴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들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유튜브에서 영국군 병영민요를 찾아 들었다.

그중 가장 오래 귓가에 남은 것은 “I Don’t Want to Join the Army.”였다. “I don’t want to join the Army, I don’t want to go to war….” 병사들은 웃으며 행군했다. 가사는 “군대에 가기 싫다”고 노래하는데 발걸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노래가 왜 행군곡이 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반전가요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자료를 찾아보니 그것은 전쟁을 거부하는 노래라기보다 병사들이 스스로 만들어 부르던 병영민요였다. 애국가도 아니고 선전가도 아니었다. 전쟁을 견디기 위해 서로에게 건네는 농담에 가까웠다.

나 역시 수술실이나 병실에서 그런 장면을 자주 보았다. 마취를 기다리며 농담을 던지는 병사, 얼굴에 붕대를 감고도 면회 온 후임을 놀리는 병사. 웃을 이유가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었다. 웃지 않으면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매킨도(Archbald McIndoe)의 기니픽 클럽(Guinea Pig Club)도 그랬다. 중증 화상을 입고 매킨도에게 치료받은 조종사들은 서로 별명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며 웃었다. 기니픽 클럽은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었다. 얼굴과 손, 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조종사들이 서로의 흉터를 숨기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공동체였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서로를 놀렸다. 치료가 끝난 뒤 시작되는 또 다른 치료였다. 상처를 잊기 위한 웃음이 아니라 상처에 굴복하지 않기 위한 웃음이었다.

참호의 노래도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닐까. “군대에 가기 싫다.” “집에 있고 싶다.” 그렇게 노래하면서도 그들은 발을 맞추어 행군했고 전투에 나갔다. 노래는 총알을 막아 주지 못했지만, 두려움을 혼자 견디지 않게 해 주었을 것이다.

외과의사는 피부를 봉합한다. 뼈를 맞추고, 힘줄을 잇고, 얼굴을 다시 만든다. 그러나 사람의 상처는 그것만으로 아물지 않는다. 때로는 전우의 농담 한마디가, 함께 부르는 노래 한 곡이, 메스가 닿지 않는 곳을 봉합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영국 병사들의 병영민요를 반전가요로 듣지 않는다. 그것은 총알을 막는 노래가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를 붙들어 주는 봉합사처럼 들린다.

영국군이 한국전쟁에 가져온 것은 총과 전차만이 아니었다. 참호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문화, 노래로 서로를 버티게 하는 문화도 함께 가져왔다. 그것은 전쟁에서 적을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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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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