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1월 23일 오후 3시. 서울고등법원 312호 법정. 피고인석에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장 세 명이 앉아 있었다. 윤기 없는 백발의 뒷모습이었다. 피곤에 절고 지친 모습이었다. 남재준 씨는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이병기 씨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다. 그리고 이병호 씨였다. 평생 정보맨으로 산 사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국정원장들이 구속됐다. 그들의 죄명은 뇌물죄였다. 대통령에게 돈을 상납했다는 것이다.
“피고인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하세요.” 재판장이 최후진술을 명령했다.
남재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성대에 이상이 생겨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성대는 멀쩡한 것 같았다. 목소리는 잘 들렸다.
“다음, 이병기 피고인. 마지막으로 할 말은?” “제가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고 해서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 뇌물은 국정원 예산담당 직원에 의해 절차를 밟아 청와대 담당 비서관에게 갔습니다.”
그가 재판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제 생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려고 했다면, 몰래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직접 주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이병호 피고인, 최후진술을 하시죠.” 그가 자리에서 굼뜬 동작으로 힘들게 일어났다. 82세의 노인이었다. “저는 인생에서 이것이 다시 없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정보기관에 몸 바쳐 온 사람으로서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그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만들고 싶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중심체가 필요했습니다.” 방청객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정보기관은 원래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목적 달성을 위해 중앙정보부에 손과 발의 역할도 맡겼습니다.”
중앙정보부는 대통령의 몽둥이였다. “제가 처음 들어갔던 시절 정보기관은 가장 애국적인 조직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충성심으로 피가 끓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정보기관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재판장은 팔짱을 낀 채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정보기관은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과오도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정권에 휘둘리고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의 본질은 권력이 사람들을 네 편, 내 편으로 가르고 상대편을 적폐로 몰아 법을 동원해 죽이는 과정입니다. 살벌한 증오가 기승을 부립니다. 판결은 법치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통합과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법원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재판장은 듣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럴듯한 무대 뒤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법의 잔인성과 비겁함을 여러 번 겪었다. 그의 최후진술은 텅 빈 법정의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나는 이병호 국정원장의 변호인이었다. 그와는 같은 교회를 다니는 아파트 이웃이었다.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국정원장의 부인이 사무실로 찾아왔었다. “나이 팔십이 된 영감이 감옥 안에 있는 걸 보니까 밤에 잠이 안 와요.”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박근혜 탄핵으로 거리는 붉은 촛불의 바다였다. “이렇게 폭풍이 칠 때는 그저 납작 엎드려야 해요. 영감을 면회 가서 그저 조용조용하자고 그랬어요.” “그건 아니죠. 뭘 잘못했다고?” 내가 부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래도 재판장에게 잘 보여야죠.” “이미 죽이기로 했을 겁니다. 납작 엎드려 봐야 비굴해지기만 합니다. 덤벼야 합니다.” “그래도 살아 보면 세상이 그게 아닌데….” 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 재판의 부당성을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려고 합니다. 법관이 귀를 막고 있으면 밖에 대고 소리쳐야죠.”
부인이 나를 살피고 있었다. 그 눈에 어떤 의심의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건 아니죠. 내 남편을 우선 살려내고 봐야죠.” 내 속에서 뭔가 치솟아 올랐다. 남편을 따라 자결하는 역사극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권력 서열 제일 위에 있는 국정원장 부인이시면서 그렇게 나약하고 비겁하시면 됩니까? 입을 닫고 굽힌다고 살 것 같습니까? 차라리 밟히면서 오히려 꿰뚫는 송곳이 되어야 합니다.”
국정원장 부인의 얼굴에 불쾌감이 떠올랐다.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부인이 돌아간 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미안했다. 부인의 심정은 알았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어차피 국정원장은 죽은 목숨이다. 마지막 선택은 꿈틀거리는 것이다.
최후진술 며칠 전이었다. 구치소에서 국정원장과 만났다. “최후진술을 할까요? 아니면 침묵할까요?” 그가 방향을 물었다. “저는 바른 말을 할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 내란음모 사건에서 김대중의 최후진술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법정에서 사도 바울이 한 최후진술이 성경이 되었고, 이천 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손들이 볼 최후진술서를 감옥 안에서 준비하세요. 침묵할 때는 침묵하지만, 말할 때는 말해야 합니다. 죄가 없고 정치재판이라는 것은 세상이 압니다. 그보다는 대국적으로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를 남기는 것이 어떨까요?”
그가 결심한 눈빛이었다. 내가 덧붙였다. “저는 변호사로서 이 재판을 통해 내가 본 것과 느낀 것들을 글로 증언하려고 합니다.”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합시다. 우리 뒤에는 그분이 계신다고 믿습니다.”
몇 년이 흘렀다. 국정원장 부부가 내가 사는 동해 바닷가로 찾아왔다. 나와 다투던 부인이 미소를 지었다. 맨발로 해변을 걸었다. 파도가 와글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나는 당시 목격한 일들을 책으로 냈다. 욕을 먹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