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세계

[북중미 월드컵] 사자와 같이 용맹하게 싸우면 지더라도…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이변을 기록한 16일(현지시간) 스페인과 카보베르데의 경기. 보지냐 카보베르데 골키퍼가 스페인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사진 연합>

카보베르데와 1954년 대한민국 대표팀이 남긴 월드컵의 진짜 이야기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회에 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한국 대표팀이 헝가리와 대결을 앞두고 그라운드에 입장하고 있다. 한국은 당시 헝가리에 0-9로 패했다. <사진 연합뉴스>
[아시아엔=팬다이머 김현원] 북중미 월드컵 참가 48개 팀이 1경기씩 치렀다. 월드컵의 강팀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한번 정도는 우승하였고 기본적으로 FIFA 렝킹 10위 권 안쪽에 있는 팀들을 말한다고 해도 크게 무리 없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 이런 조건에 맞는 나라는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던 아르헨티나(FIFA 1위)와 프랑스(FIFA 3위), 그리고 스페인(FIFA 2위)과 영국(FIFA 4위)을 들 수 있다. 그 외 이번 월드컵에서는 랭킹이 좀 떨어진 브라질(FIFA 6위, 월드컵 5번 우승) 독일(FIFA 10위, 월드컵 4번 우승)과 같은 전통의 강호를 들 수 있다. 그 외 우승경력은 없지만 전통의 강호인 네덜란드(FIFA 8위), 포르투갈(FIFA 5위)와 지난 월드컵 4위에 올랐던 모로코(FIFA 7위)가 FIFA 랭킹 10위권 안에 있다.

앞에서 언급한 FIFA 1, 2, 3위의 강팀, 아르헨티나, 프랑스, 스페인과 약팀으로 알려져 왔던 팀들의 대결을 살펴보자.

지난번 카타르월드컵 준우승 팀 프랑스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우승팀으로 최고의 강팀으로 여겨졌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세네갈에게 1:0으로 일격을 당한 수치스러운 기억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프랑스는 세네갈을 만났다. 세네갈은 잘 싸웠지만 프랑스의 스트라이커인 음바페의 2골에 의해 3:1로 졌다. (음바페는 실제로 페널티 반칙으로 1골을 더 넣을 수 있었지만 심판의 명백한 오심으로 페널티킥을 놓쳤다. 음바페는 월드컵 최고 득점 기록의 독일의 클로제(16골)를 2골 차이로 추격했다.)

카타르월드컵 우승팀 아르헨티나는 북아프리카의 알제리(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에 4:2로 승리)와의 대결에서 메시의 3골에 힘입어 대승을 거두었다. 그렇게 힘들어 보이던 골들이 메시에게는 너무나 쉽게 보였다. 메시는 200번째 A매치에서 16골을 기록해서 클로제와 월드컵 최다 득점 동률을 기록했다. 앞으로 음바페와 메시의 득점 대결이 기대된다. .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는 음바페와 메시라는 스트라이커가 있어 쉽게 골을 넣는 것 같다. 월드컵의 강국은 항상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를 보유하고 있다. 축구에는 판정승이 없다. 수도 없이 슈팅을 날려도 골을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다. 축구에서 평균 10개의 슈팅에서 한 골이 나온다. 만약 스트라이커가 평균 3번 슈팅에서 한골을 기록한다면 그 팀의 승률은 급상승할 것이다. 축구는 골을 넣는 것 못지않게 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먹었어야 할 골을 골키퍼가 몇 개만 수퍼세이브로 막으면 그 팀은 지는 경기를 이길 수 있다. (체코와의 경기에서 경기 막판 기록한 김승규의 수퍼세이브를 생각해보자. 골키퍼가 질 수도 있는 경기를 지킨 셈이다) 현대 축구에서 쉬게 골을 넣는 뛰어난 스트라이커와 수퍼세이브를 경기마다 기록하는 골키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카보베르데 지도

소개할 마지막 경기는 스페인과 월드컵 첫 번째 출전하는 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 인구 52만명의 카보베르데와의 경기이다. 스페인은 슈팅 27개나 몰아쳤지만 카보베르데의 밀집수비는 생각보다 촘촘했고 스페인의 슈탕은 무위에 그쳤다. 몸으로 강슛들을 막아낸 카보베르데의 40살 골키퍼는 이 대회 최고의 스타로 떠 올랐다. 물론 운도 따랐겠지만 용맹한 카보베르데는 사자같이 용맹하게 싸웠던 과거 어느 한 나라를 기억하게 해준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1년도 안되어 한국은 1954년 월드컵에 참가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의 입국을 거부해서 홈앤드어웨이를 대신해서 일본에서만 2번의 경기를 했다. 워낙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라서 한국이 일본으로 가는 여비를 만드는 것부터 문제였다. 당시 역도산, 신격호 등 재일 인사들의 지원으로 간신히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지면 현해탄을 건널 생각을 하지 말자는 각오 아래 한국은 일본과의 첫 경기를 5:1로 이기고 두 번째 경기는 2:2로 비겨서 총 7:3의 전적으로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단복도 양복점에서 빌려 입고, 비행기 편이 없어서 천신만고 끝에 20여일 만데 대회 전날 스위스에 도착했고 시차적응도 없이 짐도 못 풀고 유니폼만 갈아입고 경기에 출전해야 했다. 간신히 유니폼만 갈아입고 임한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터키에 7:0, 그리고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에 9:0으로 대패하였다. 그러나 한국 팀 골키퍼 홍국영은 100개의 유효슈팅 중 9개밖에 허락하지 않았다. 경기 중 쥐가 나서 4명이 실려 나가고 7명으로 끝까지 버텼다. 한국 팀은 비록 졌지만 헝가리의 감독은 “그들은 사자처럼 용감했다. 쓰러져도 계속 일어나 뛰었다.” 하고 칭찬했다. 대한민국의 김용식 감독은 대진표만 보고도 우리가 1승을 할 가능성이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져도 좋다. 그러나 한 골만이라도 넣자. 그래야 전쟁 때문에 헐벗고 힘든 우리 국민이 조금이라도 시원해지지 않겠나?”라는 유명한 말로 선수들과 전의를 다졌으나, 열악한 조건 탓에 간신히 그 전날 도착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실력 발휘도 못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여비가 없는 대한민국 팀은 그 다음날 귀국길로 올랐는데, 어이없게도 참가국에 8400불이나 되는 꽤 큰 경기배당금이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 돈은 4년 후 월드컵에서 받기로 했었는데 참가신청서 분실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예선참가도 못하게 되고 돈도 어이없게 몰수당했다.- 그러나 전쟁을 치른지 일 년 만에 출전한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이 엄청난 투혼을 발휘했다는 것을 뒤늦게 안 축구팬들은 한국 팀의 숙소에 와서 옷과 먹을 것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돌아갔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눈물 나는 이야기이다.

당시 아시아 팀의 수준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팀을 월드컵에서 배제하자는 얘기도 나왔으나 당시 줄리메 FIFA회장은 “지금은 한국과 같은 나라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해도 수 십 년 후에는 전혀 모를 일이다.” 하며 반박하며 지구촌의 모든 대륙 국가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은 영어를 모르는 축구협회 직원의 설합 속에 월드컵 신청서가 잠자고 있었던 바람에 대한민국은 예선에 참가도 하지 못했던 웃음보다는 가슴이 아리는 슬픔이 앞서는 에피소드가 있다. 상전벽해가 일어난 지금 돌아다보면 시대를 초월하는 줄리메 회장의 혜안에 감사할 일이다.-월드컵 우승컵을 줄리메 컵이라고 불렀다. 3번 우승하는 팀이 줄리메 컵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 줄리메 컵은 1970년 3번째 우승한 브라질이 영구 소유하게 되었다.

카보베르데 국민들이 스페인과의 경기를 텔리비전을 통해 관람하고 있다.

스페인과 용맹하게 맞싸운 카보베르베를 통해서 1954년 대표팀을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굴하지 않고 사자와 같이 용맹하게 싸웠던 그 선배님들을 기린다. 사자와 같이 용맹하게 싸우면 지더라도 그것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그저 한국대표팀이 승부를 떠나서 용맹하게 싸우기만 바란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김현원

연세대 의대 전 교수, 팬다이머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