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으로 걸어간 여율(呂律)의 길

이 글은 김지하 시인(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별세 직후인 2022년 5월 이우근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쓴 추모 칼럼입니다. 필자는 유신시대와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직접 경험한 법조인의 시각에서 김지하 시인의 문학과 삶, 그리고 생명사상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 기억이 담긴 글로,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읽으며 김지하 문학이 남긴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시인은 노을 붉게 물든 바닷가에서 사랑을 속삭이지 않았다. 사이사이로 밝은 햇살이 파고드는 숲속에서 희망을 노래하지 않았다. 별을 바라보고 달을 우러르며 연가(戀歌)를 부르지도 않았다.
시인은 최루탄 터지는 길거리에서 자유를 외쳤다. 핏빛 어린 황톳길 어귀에서 일그러진 역사에 분노의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신새벽 뒷골목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흐느꼈다.
신새벽 뒷골목에 /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숨죽여 흐느끼며 /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얼마나 짜디짠 눈물로 빚어낸 첫 구절인가! 시간은 새벽도 아닌 신새벽, 공간은 골목도 아닌 뒷골목…. 아직 컴컴하기만 한 미명(未明)인데 무엇이 그리 다급했던지 어두운 뒷골목에 숨어들어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초라하게 써놓고 숨죽여 흐느꼈던 한마디, 민주주의….
그것은 어떤 제도도, 무슨 이념도 아니었다.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을 간직한 채 목마르게 그리운 ‘너’라는 2인칭 인격체였다. 그래서 아직 동트지 않은 신새벽 뒷골목의 황급한 낙서는 이런 끝 구절로 마쳐야 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사방이 꽉 막혀 답답하고 어둡기만 했던 시절, 애끓는 젊은 가슴들의 통풍구 역할을 톡톡히 했던 김지하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는 출간되자마자 금서(禁書)로 낙인찍혀 통째로 압수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타는 목마름’은 더욱 절실한 시대의 아픔, 지하(地下)의 갈증이 되었다. 용솟음치는 젊은 피를 1970~80년대의 먹구름 밑에 묻어야 했던 이들에게는 첫 구절의 ‘신새벽 뒷골목’과 끝 구절의 ‘타는 목마름’이 아직도 엄숙한 현실인 듯 생생할 터이다.
지하 시인은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는데, 민청학련 사건의 변론 실무를 맡아 수사와 공판의 전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그에게서 사형에 해당할 만한 범죄 혐의를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기에 분노로 치를 떨어야 했다. 다른 피고인들의 혐의도 대부분 침소봉대였지만, 전국 규모의 시위에 특별한 실행이나 결정적 배후 조종의 흔적이 없었던 지하 시인의 경우는 계엄사법의 횡포가 더욱 심했다.
“젊은 벗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대학생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던 1991년 봄, 시인은 이 발언으로 ‘민주화운동에 정신적 죽음을 초래한 관념의 굿판을 벌였다’는 비난을 받으며 오랜 동지들로부터 배신자의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그는 무슨 정신적 죽음을 초래하려 한 것이 아니고 ‘정치보다 더 큰 생명 가치’를 외치고 싶었던 것이리라.
할복(割腹)이라는 ‘소멸과 죽음의 예식’을 통하여 탐미감(耽美感)의 극치를 만끽했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사무라이의 후예임을 자랑하는 저 극우 군국주의자를 시인은 실컷 두들겨 패기도 했다.
“별것 아니여 / 조선놈 피 먹고 피는 국화꽃이여 / 빼앗아 간 쇠그릇 녹여 벼린 일본도(日本刀)란 말이여…
미쳐버린 / 네 죽음은 식민지에 / 주리고 병들고 묶인 채 외치며 불타는 식민지의 / 죽음들 위에 내리는 비여 / 역사의 죽음 부르는 / 옛 군가(軍歌)여 별것 아니여… / 제멋대로 불러대는 미친 미친 군가여.”
-‘아주까리 신풍-미시마 유키오에게’
“사회를 바꾸려면 음악부터 바꿔야 한다.” 지하 시인은 율려(律呂)를 여율(呂律)로 뒤집은 정역(正易)을 매우 사랑했다. 율(律)의 남성적 지배의식보다 여(呂)의 여성적 문화의식이 앞서는 여성 시대를 미리 내다보았던가. 경직된 정치·사회 체제를 부드러운 생명·문화 체제로 변화시키는 어머니의 지혜와 사랑을 타는 목마름으로 그리워했던가.
시인에게 피는 전사(戰士)의 죽음이 아니라 어머니의 생명이었다. 어두운 시대 속에 스며들었던 스산한 피 내음을 떠올리며, 평생 걸어온 ‘흰 그늘의 길’ 끝에서 며칠 전 저세상으로 떠나간 김지하 시인을 흉내 내어 한마디 하련다.
피범벅이 된 싸움소의 붉은 눈망울에 성큼 큰돈을 내거는 물신(物神)의 숭배자들,
억압과 저항의 싸움판에서 피바람을 일으키는 죽음의 전사(戰士)들,
정권 투쟁의 길목에 자살자(自殺者)의 피를 흩뿌리는 사도마조키스트(sado-masochist)들,
멀건 대낮에 고향 뒷산을 집단처형의 피바다로 만드는 주체(主體)의 광인들….
그 오컬티스트(occultist)들에게 말하련다.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피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