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육칼럼

손흥민은 왜 ‘Sohn’ 대신 ‘Son’을 택했을까…”영문 이름에도 전략이 있다”

AI 생성 이미지

“영어 단어나 표현에 좋은 대체물이 있으면 그걸 택하라. 구삼열의 ‘삼열’을 ‘Samuel’로 하면 어떤가?”

첼리스트 정명화의 남편이 구삼열(具三烈)이다. 그의 영문 이름을 보면 이름의 영문 표기를 굳이 우리말 발음 그대로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구삼열(전 AP통신 기자, 한국인 최초 유엔 직원, 유엔특별기획국장, 외교통상부 문화협력대사, 아리랑TV 사장)은 자신의 약간 촌스러운 이름 ‘삼열’의 영문 표기를 ‘Samuel(사무엘)’로 했다. 외국인들이 듣기에 편하고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었다. 굳이 ‘Sam Ryul’ 등으로 쓰며 듣기도 어렵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탁견이다.

참고로 정명화·정경화의 남동생 정명훈(KBS교향악단 음악감독, 라 스칼라 교향악단 명예지휘자, 2027년부터 라 스칼라 오페라 상임지휘 예정자)의 아내 구순열 씨가 구삼열 씨의 여동생이다. 따라서 이들 정 씨와 구 씨는 겹사돈 관계다.

필자도 ‘기만’의 영문 표기를 보통 쓰듯이 ‘Kiman’이라 하지 않고 ‘Keyman’이라고 한다. Keyman은 key post(핵심 자리), key person(핵심 인물), VIP(Very Important Person)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좋고, 외국인들도 기억하기 편하다고 말한다.

만일 ‘석미’라는 이름의 여성이 영문 표기를 ‘Suck me’라고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강(姜)을 Gang(갱), 식(植)을 Sick(병든), 신(信)을 Sin(죄악)으로 표기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Young Sam’도 구미권에서는 ‘어린 샘’ 정도의 뜻으로 읽혀 약간 조롱조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따라서 이름의 영문 표기는 원래 이름의 발음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단어가 영어권에서 어떤 의미로 들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굳이 발음이 똑같지 않더라도 좋은 대체물이 있다면 그것을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필자의 고교 친구로 미국 뉴저지에 사는 최재림(崔在林)은 ‘재림’의 영문 표기를 ‘Jeremy’로 하는데, 좋은 창안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Jaelim’ 같은 표기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필자와 같은 시기 경향신문 파리특파원을 했던 고승철(高承徹, 전 문학사상 사장)은 승철의 ‘철’을 영어 단어 ‘Cheer’로 표기한다. 멋지다. 필자의 언론계 동료인 홍선희 전 기자는 ‘Sunny Hong’이라고 쓰는데, 이것도 좋아 보인다. 규(圭·揆 등)를 Kyu, Gyu 대신 ‘Q’로 쓰는 경우도 대단히 센스 있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예술가들 중에도 이름 영문 표기에 신경 쓴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영문 이름을 ‘Sumi Jo’로 쓴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는 ‘Sarah Chang’을 사용하고, 존스홉킨스 피바디 음대와 줄리어드 음대(석사)를 나온 테너 노종윤은 ‘John Noh’를 영문명으로 쓰고 있다.

화가들 가운데 해외에서 명성이 높은 이우환 화백은 ‘Lee Ufan’으로 이름을 표기한다. ‘Ufan’은 발음이나 이미지 면에서 ‘Woowhan’ 등보다 훨씬 세련돼 보인다. 오윤 화백은 통상의 성 표기 ‘Oh’ 대신 ‘O Yun’을 사용했다. 비디오아트의 세계적 창시자인 백남준(2006년 74세로 별세)은 영문명을 ‘Nam June Paik’으로 표기해, 일반적인 ‘Joon’ 대신 영어의 6월을 뜻하는 ‘June’을 선택하는 기지를 보였다.

박재선 전 주세네갈·모로코 대사의 영문명은 ‘Jason Park’이다. 괜찮지 않은가. 또 한국 축구의 영웅 손흥민 선수는 독일과 영국에서 ‘Son Heung-min’이라는 영문명을 사용하고 있다. ‘손’이라는 성을 ‘Sohn’이라 쓰는 사람도 많지만, 손흥민은 ‘Son’을 택했다. 마치 ‘팀의 아들’, ‘축구의 아들’ 같은 느낌을 주는 이름이다. 그는 북미리그로 옮기기 전까지 10시즌 동안 영국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며 ‘써니(Sonny)’라는 애칭으로도 많이 불렸다. ‘도련님’, ‘젊은이’ 정도의 뜻을 가진 이 별칭은 그가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독일 분데스리가에 데뷔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기도 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는 영문 이름을 잘 짓는 것도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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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대표, 김대중정치학교 대외협력본부장,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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