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제주 4·3’과 ‘사북’…46년의 기다림, 정선에서 묻는 국가의 사과

1980사북

오늘 4·3 78주년, 제주에서 사북까지…국가폭력의 기억과 정선에서의 물음

[아시아엔=황인욱  저자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 <사북항쟁과 국가폭력> 저자] 올해는 제주 4·3사건 78주년이다. 78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를 훌쩍 넘어섰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권력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우리는 그 기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나는 지금 강원도 정선에 있다. 사북의 기록을 정리하고, 광부들의 기억을 붙잡는 일을 하고 있다. 제주에서 시작된 질문이 왜 사북으로 이어지는지, 그 이유는 점점 분명해진다.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는 12개 경찰지서에 대한 동시다발적 공격으로 사건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 출발은 1년 전인 1947년 3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 기마가 아이를 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사건. 그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억눌려 있던 분노가 폭발하는 계기였다. 이후 경찰 발포, 총파업, 외지 경찰 투입과 서북청년단 개입으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공식 집계만 1만 4000여 명.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 희생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제주 사람들은 오랫동안 ‘양민’이 아니라 ‘적’으로 취급되었다.

그로부터 32년 뒤, 1980년 4월 강원도 사북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경찰 지프가 광부를 치고 달아난 사건. 그러나 이것 역시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기업과 권력에 결탁한 경찰, 어용노조, 그리고 죽음을 일상처럼 감내해야 했던 광부들의 삶이 쌓여 폭발한 것이었다.

광부들은 공권력과 정면 충돌했고, 사건은 급격히 확산됐다. 이후 이어진 것은 보복 수사와 고문, 대규모 연행이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200여 명. 당시 광부 10명 중 1명이 끌려갔다는 증언도 있다.

제주에서는 사람들을 ‘양민’이라 불렀고, 사북에서는 광부들을 ‘산업전사’라 불렀다. 이름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국가는 그들을 보호해야 할 시민이 아니라 통제와 동원의 대상으로 보았다.

1973년부터 1979년까지 탄광 사고 사망자는 1400명이 넘었다. 광부들은 사실상 죽음을 전제로 한 노동 속에 놓여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조차 진폐증으로 서서히 죽어갔다.

이것은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4.3사건에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에서 국가권력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그는 “국가권력에 의한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사과는 이후 명예회복과 보상, 추모 사업으로 이어지며 제주 4·3을 치유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나 사북은 다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두 차례나 사북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국가의 공식 사과는 여전히 없다.

사북 광부들과 가족들이 부당한 공권력 집행에 항의하고 있다.

나는 지금 정선에서 묻는다. 사북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제주가 55년 만에 사과를 받았다면, 사북은 이미 46년을 기다렸다. 기다림의 길이보다 더 무거운 것은 그 사이의 침묵이다.

왜 같은 국가폭력인데 어떤 기억은 치유되고, 어떤 기억은 방치되는가.

4·3은 제주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사북으로 이어지고, 오늘의 한국 사회로 이어진다. 국가가 시민을 어떻게 대하는가, 권력이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우리는 그 기억을 어떻게 다루는가. 이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4·3은 끝나지 않는다.

용서와 화해는 출발이 아니라 결과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진실을 인정하고, 책임을 묻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제주가 그 길을 걸었다면, 이제 사북이 그 길을 걸어야 한다.

나는 정선에서 다시 묻는다. “사북에 대한 국가의 사과, 아직도 늦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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