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3년 전부터 근무하는 병원의 수술실은 교수, 군의관, 전공의, 남자 간호사 등이 함께 사용한다. 젊은 친구들은 작은 캐비닛이라도 배정받지만, 우리는 ‘교수님’이라고 적힌 몇 개의 로커를 공동으로 쓸 뿐 개인 물건을 둘 자리는 없다. 그 정도 불편은 일상처럼 받아들인다.
수술을 마치고 외래나 응급실에 들렀다가 다시 수술실로 돌아와야 할 때면 작은 고민이 생긴다. 피가 묻지 않은, 잠시 입었던 수술복을 햄퍼에 넣고 새 옷을 입을지, 아니면 그대로 다시 입을지. 땀이 많이 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 옷을 정갈하게 접어 로커 맨 윗칸에 올려둔다.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건드리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다시 돌아와 그 옷을 입을 수 있도록. 금방까지 내 체온이 남아 있는 옷은 새로 꺼낸 뻣뻣한 수술복보다 훨씬 부드럽다.
그렇게 옷을 곱게 접어 올려놓는 짧은 순간, 나는 종종 그 구절을 떠올린다.
“그 머리를 쌌던 수건은 따로 개켜 한 곳에 놓여 있었다.” (요한복음 20장 7절)
아무도 보지 않은 새벽, 설명보다 더 깊은 침묵과 질서가 남아 있던 장면. 부활의 조용한 단서를 품은 이미지다.
며칠 전, 32세 20주 임신부의 눈확(안와)골절 수술을 맡았다. 젊은 군의관들이 어려워해 함께 방법을 찾아보며 진행했고, 산부인과 의사가 옆에서 태아 상태를 모니터링했다. 여러 사람이 조심스럽게 살펴 가며 손을 모았고,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수술을 마치고 나니 문득 부활 달걀(Easter egg)이 떠올랐다. 단단한 껍질 속에서 보이지 않는 생명이 자라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껍질을 다시 맞추어 주는 듯한 감각. 오늘의 수술도 그에 가까웠다. 눈확골절로 흔들린 구조를 정비하며,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또 다른 생명이 무사히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이 조용히 마음에 남았다.
며칠 뒤면 성지주일, 그리고 성주간(Holy Week)이 찾아온다.
부활은 거대한 사건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 다시 안전해지는 작은 순간들, 수술복을 개켜 올려놓는 질서, 흔들리던 뼈가 제자리를 찾는 과정, 모태 속 생명의 미세한 박동처럼 아주 작은 일상 속에서 조용히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