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14일, 강원도 홍천 내면 창촌마을의 하늘이 유난히도 낮게 내려앉았습니다. 30년간 마을을 지켜온 ‘우리 동네 주치의’, 창촌의원 윤성호 원장이 향년 59세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성당에서는 그를 ‘루카 형제’로 불렀고, 병원에서는 ‘선생님’으로, 마을에서는 ‘윤 원장’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을 떠올리는 이들은 그를 단지 이름이나 직함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주민들 곁에 머물렀던 따뜻한 손, 불을 밝히던 병원, 이름을 불러주던 정겨운 인사로 그를 추억합니다.
홍천성당 김준찬 빈첸시오 회장은 “윤 원장님은 작년 암을 얻어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도 최근까지 환자들 진료를 이어갔다”며 암 투병 중인 9순 노모를 모시다 먼저 떠난 효자 윤 원장을 애도했습니다.
홍천군 내면 창촌리. 지도상에서는 점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곳엔 한 마을의 시간과 생명이 흐르던 공간이 있었습니다. 창촌의원은 1995년 윤성호 원장과 김미선 간호사가 처음 터를 잡은 이후 30년 가까이 마을의 응급실이자 진료소, 사랑방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윤성호 원장은 속초 출신으로, 원광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한동안 고향 병원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함께 인생을 걸어가게 될 김미선 간호사를 만나 부부가 되었고, 홍천 창촌에 병원을 짓고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스키장이 들어오면 병원이 꼭 필요할 것 같아서요.” 스키장에서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을 치료하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IMF가 터지며 스키장 계획은 무산됐고, 도시로 나갈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그는 묵묵히 지금 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는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나가야 할 텐데, 그 고생을 어찌 감당하시겠어요?” 실제로 창촌의원은 단순한 진료소가 아니었습니다. 이름을 외우고 안부를 챙기는 따뜻한 인사, 가족사까지 알고 있는 깊은 이해, 그리고 응급상황에도 놀라지 않고 진단을 내리는 의료인의 책임감. 윤 원장은 수술 대신 정확한 진단과 조언으로 마을의 생명을 지켜왔습니다.
교통사고로 내원한 환자에게서 외상은 없어 보였지만, 말투가 이상하다는 점을 감지한 그는 비장파열을 의심하고 신속히 이송을 지시했습니다. 그것이 골든타임을 살리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윤 원장의 진료 철학은 명확했습니다. “환자에게 좋은 일이잖아요.” 행정적으로 번거롭고 수익도 없는 절차라 해도 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면 그는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군에서 시행하는 의료비 지원 제도도 그가 적극적으로 알려 주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에게 병원은 수익을 내는 사업장이 아니라, 마을을 지탱하는 삶의 한 축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인터뷰 기사(강원도민일보 유승현 기자, 2023년 9월 9일 보도)에서처럼 “마을 주민의 속사정까지 챙기는 정이 넘치는 사랑방”이었습니다. 실제로 병원 안에는 ‘어디가 아프세요?’라는 질문보다 “옥수수는 잘 익었어요?”, “요즘 잠은 좀 주무세요?” 같은 대화가 더 익숙했습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으로 채운 공간. 그것이 창촌의원이자, 윤성호 원장의 품이었습니다.

창촌의원은 행정상 병원이지만, 윤 원장과 김 간호사 부부에게는 하나의 사명이자 사적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밤늦게 문을 두드리는 응급환자에게도, 연휴에 아파 찾아온 아이에게도, 그들의 병원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습니다. 한때 윤 원장은 이로 인해 과로로 쓰러질 뻔했고, 이후 진료시간을 정해 건강을 돌보려 했지만, 그의 마음은 늘 병원 문턱을 드나드는 이들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작년 암을 얻어 1년 투병 끝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진단뿐 아니라, 죽음의 순간에도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독거노인의 검안 요청이 들어오면 거리와 상관없이 출장을 나갔고, 유족들이 장례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내 환자는 아니지만, 마을 분이잖아요.” 그는 늘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부인 김미선 간호사는 내면성당 연령회의 총무로 활동하며 신실한 신앙과 지역사회 봉사를 병행해 왔습니다. 두 사람은 병원 안에서 의료인으로, 병원 밖에서는 교우로 살아왔습니다. 부부가 함께 이끌어온 삶은 하나의 병원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장례미사는 7월 15일(화) 오전 10시 서석장예식장에서 엄수됩니다. 입관예절은 오후 1시, 출관예절은 16일 새벽 6시, 화장은 오전 9시 20분 춘천안식원화장장에서 거행됩니다. 내면성당 교우들과 지역 주민들은 하나같이 그를 위해 기도하며, ‘루카 형제’의 영원한 안식을 빌고 있습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말수가 적었지만, 진료실에서는 누구보다 말이 많았습니다. 그 말은 병의 징후를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자,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한 위로였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커다란 병원이 남은 것이 아니라, 작고 단단한 진심의 흔적들이 남았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 창촌. 그곳에서 평생을 바쳐 공동체를 지켜낸 한 사람의 죽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의사로, 신자로, 남편이자 이웃으로 살아온 윤성호 원장. 그는 이제 이 세상의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더 많은 생명과 이웃을 품을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늘이 데려간 신실하고 진실한 사람. 윤성호 루카 원장을 기억하며, 남은 우리들은 그의 삶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걸어야 할 것입니다. 그의 사랑과 책임감, 그 따뜻한 미소를 마음에 품고 말입니다. 부디, 하늘에서 평안을 누리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