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너무 한꺼번에 핀 연꽃들…”그래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거늘”

연지에 가득 핀 연꽃 <사진 이병철>

‘몽골 생태영성순례’라는 이름으로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여름이 깊어지던 때에 스무 날 가까이 집을 비웠다. 돌아오니 온 집안과 텃밭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 마치 사람이 떠난 빈집처럼 보였다. 순례 일정은 열흘이었지만, 서울에서 다른 일들이 겹치면서 귀가가 늦어졌다. 그 사이 날씨는 극심한 가뭄이었고, 화분과 봄에 심은 어린 나무 몇 그루가 말라 죽었다.

이틀간 예초기로 마당과 텃밭을 정리했더니, 여행의 피로와 더위가 겹쳐 감기몸살이 찾아왔다. 읍내에 나가 약을 사서 복용했지만 쉽게 낫지 않는다. 젊었을 땐, 가능하면 약 없이 버티려 했지만, 이제는 그런 기운조차 사라진 듯하다.

오랜만에 연지에 나가보니, 연꽃이 가득 피어 있다. 그 모습이 낯설게 다가온다. 집을 떠나기 전, 연지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만 해도 두세 송이밖에 없었는데, 어느새 수천 송이가 만개해 있다. 반가움보다 이질감이 먼저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일 30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지는 요즘, 연꽃에게는 지금이 절정의 시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처럼 앞다투어 피어나는 것도 당연하리라. 하지만 너무 많은 꽃이 한꺼번에 피어 있으니, 어느 꽃에 눈길을 줄지, 어떻게 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귀하다’는 말은 흔하지 않다는 뜻이다. 귀하다는 것은 곧 소중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지금, 한꺼번에 피어난 연꽃들 앞에서 출발 전의 감탄과 설렘이 희미해진 것은, 연꽃이 너무 많아져 더 이상 귀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귀하지 않은 존재가 어디에 있을까.

모든 생명, 모든 존재는 저마다 고유하고 독특하다. 서로 닮았을 수는 있어도 완전히 같은 것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하나의 생명, 하나의 존재는 곧 하나의 우주다. 서로 이어져 있으되,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며 변화하는 이 우주가 곧 존재의 본질일 것이다.

지금 내 고민은, 수많은 연꽃 중 어떤 꽃에 시선을 둘 것인가다. 나의 주의가 향하는 방향, 그 끌림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연지 앞에 선 지금 이 순간, 이미 나는 하나의 선택을 한 셈이다. 수천 송이 연꽃 가운데 한 송이에 시선을 건넨다는 것은, 나머지를 외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눈길이 닿는 순간, 그 꽃은 ‘나의 꽃’이 된다. 내 마음 안에 새로운 우주 하나가 생성된다. 그 꽃이 나를 부른 것일까, 내가 그 꽃을 선택한 것일까. 언제나 그렇듯, 순례에서 돌아온 자리는 떠났던 그 자리와 같지 않다.
내가 변화했기에, 그 변화한 시선과 감각으로 마주하는 집도, 텃밭도, 연지도, 연꽃도 모두 새롭게 다가온다.

저무는 것과 새로 피어나는 것, 익숙함과 낯섦이 함께 존재하는 이 자리에서 다시 연꽃을 바라본다. 내 시선과 주의가 머무는 그 순간, 나는 연꽃과 함께 있고, 그것과 하나가 되기를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을 내려놓고 느낌만으로 머무는 일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과제 중 하나다. 매 순간 새롭게, 낯설게 만나려는 그 마음이야말로 ‘깨어 있음’의 본질일 것이다.

감기몸살을 앓는 와중에도, 다음 순례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폭염이 가시고, 연지에 서늘한 바람이 일어 마지막 연꽃이 꽃잎을 떨굴 때까지, 나의 순례지는 이 연지가 될 것이다.

아침, 몸을 추슬러 지리산 실상사로 향한다. 오늘부터 이틀간 여름 연찬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리산 역시 이번 생에서 나의 주요 순례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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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시인, 생명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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