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묵은지 같은’ 야심으로

 

“청년들이여, 꿈꾸던 그 순간은 곧 온다”

“최세진 씨죠? 축하드립니다. 청와대 세대공감팀장에 선발되셨습니다.”

2012년 1월 어느 날, 드디어 청와대 인사담당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마음속으론 승리의 쾌재를 외쳤지만 수화기 너머로 티를 내진 않았다.?업무 중에 빠져 나와 전화를 받은 탓이기도 했지만 왠지 그때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당시 나에게 청와대란 여전히 무겁고 거대한 미지의 세계였기에 합격통보에도 뭔가 적당한 리액션이 떠오르지 않았다. 심심한 말투로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했더니 인사담당자가 도리어 “안 기쁘시냐” 물어왔다. 얼마나 고대한 기회인데 왜 안 기뻤겠나. 전화를 끊고 한동안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기쁨과 부담, 해냈다는 성취감에 심장은 마구 두근대고 있었다.

아득했지만 살아 있던 꿈

2008년까지 나는 군인이었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나에겐 ‘군인’이 곧 평생직업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5년 간의무복무기간을 마치고 나는 전역을 신청했다. 군대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세상 물정에 둔한 탓이 컸다. 그저 군에서도 잘했으니 사회에선 더 잘해내리라 믿었다. 그러기에 첫 사회진출 목표도 거창했다.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회 변화의 중심이 되고 싶다거나 정치나 대통령에 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일개 군인이 그릴 수 있는 사회적 무대의 정점이 청와대였을 따름이었다.

청와대 입성전략은 지극히 간단했다. 대통령에게 이력서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저 무식하니 용감했다. 하지만 현실은 삼성에 입사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에게 편지를 쓴 격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첫 사회 진출의 장대한 꿈은 청와대 민원담당자의 헛웃음 소리와 함께 하릴없이 무너졌다. 전역과 동시에 백수가 될 신세였지만 운 좋게도 기획재정부의 계약직 연구원이 될 수 있었고 이후에도 다양한 도전 혹은 생(生)의 몸부림을 이어갔다. 사업에 도전해 보기도 하고 아프리카에 식수펌프를 지원하는 단체를 위해 일해보기도 했다. 무엇하나 대단한 성취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드라마 같은 실패도 없었다.

 

그리고 서른이 되던 해, 결국 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이십대의 마침표를 찍었다. 정규직으로는 처음 입사한 직장이었다. 출근과 퇴근만 제 때 해도 월급이 주어졌고 주말엔 한가로이 쉴 수도 있는 곳. 서른의 직장은 안락한 곳이었다. 하지만 일상에 익숙해질수록 마음은 무거워져갔다. 파도를 헤쳐 겨우 도착한 해변이었지만 결국 출발한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온 기분이랄까. 사관학교는 왜 갔을까, 대학 졸업해 직장인이 되었다면 굳이 이렇게 돌아올 필요 없었을 텐데… 문득 한탄이 밀려왔다.

TV뉴스에서 익숙한 단어가 들려온 때가 바로 그 즈음이었다. 청와대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세대공감팀장을 공개채용 방식으로 선발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몇 해 전이라면 주저 없이 도전했을 기회가 어쩐지 망설여졌다. 치기는 예전 같지 않았고 청와대라는 무대는 아득해 보였다. 괜한 바람이 다시 실망으로 이어질까 걱정이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꿈틀대고 있었다. 잊은 줄 알았지만 생생히 살아 있었다. 일상의 안락에 가려 잠시 숨어 있었던 수년 전의 야심이 여전히 그 곳에 웅크려 그르렁대고 있었다. 그렇게 치기 어린 도전은 몇 해가 지나서야 다시 이어졌고 놀랍고 감사하게도 이번엔 행운의 여신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우리가 아는 야심의 사전적 정의는 실로 매우 이중적이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우선 ‘무엇을 이루고자 마음에 품은 소망’이라는 뜻이 있다. 이때의 야심이란 ‘야심에 찬 젊은이’처럼 열정이나 패기와 맞닿은 좋은 의미로 해석된다. 반면 ‘순하게 길이 들지 않고 걸핏하면 해치려는 마음’의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이 땐 저밖에 모르고 제 욕심을 취하려 드는 못된 심성을 대표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와 정반대의 의미로 ‘벼슬을 버리고 전원에 묻히려는 마음’이라는 고고한 표현으로 쓰일 때도 있다.

하나의 단어를 두고 어떻게 이런 극단의 정의가 가능한 것일까. 여기엔 야심이 그만큼 꿈을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 마치 날이 잘 선 칼이 요리사에겐 식도락가의 행복을 일구는 요리도구가 되지만 누군가에겐 범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만큼 야심은 열정의 반응속도를 일으키는 효과적인 촉매이자 때론 제 삶이나 타인의 삶을 위협하는 무서운 무기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야심가 나폴레옹이 ‘야심은 인간의 원동력’이라 했고 철학자 괴테가 ‘야심은 날개’라며 야심을 위대한 가치로 이야기한 반면에 ‘야심은 욕망일 뿐’이라는 철학자 스피노자나 ‘야심은 남의 패배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던 소설가 베른하르트가 야심을 경계의 대상으로 보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들 모두 야심이 열정이나 성공을 이끄는 가장 효과적인 전제로 인정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에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처럼 ‘야심은 양날의 검’이자 ‘진정한 자유인의 조건’이 되기도 하는 것이리라.

 

고배 마셨다면 더 묵혀야 할 야심

신년의 기운이 가득한 요즘은 저마다의 야심이 가장 많이 움트는 시기다. 그래서 한해를 계획하는 청년의 마음은 이때가 가장 벅차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여전히 일자리는 충분치 않고 청년의 5분의 1은 일할 생각과 의지도 없는 무직자에 머물고 있다. 누군가에겐 이 새해 역시 기대와 희망이 잠식된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다. 한 때 치기로 그려냈던 청와대라는 막연한 야심도 수년이 지나서야 우연처럼 현실로 다가왔다. 아쉬움도 남지만 청와대에서의 1년 6개월은 그래서 더욱 값진 시간이었고 비로소 제 욕심이 아닌 목적과 방향을 가진 공공의 야심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만약 수년 전에 너무나 쉽게 그 야심이 이루어졌더라면 무지와 자만심에 사로잡혀 누군가에게 폐를 끼쳤을지 모를 일이다.

신이 있다면 분명 힘겹게 돌아가게 한 이유가 여기 있으리라. 그래서 괜찮은 야심은 겉절이보다 묵은지에서 제 맛이 난다. 꿈이 말랐다고 생각한 내 나이 서른의 건기에도 여전히 대지 밑에 움튼 야심은 온전히 살아있었다. 그럴 듯한 성공이야기도 아니요, 이마저도 과거의 이야기가 됐지만 그토록 소원하던 청와대에서 최연소 팀장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는 그래도 숨이 붙어있던 수년 전의 야심이 제 몫을 다해준 결과였다. 그래서 나는 청년에게 고한다. 야심을 붙들고 있으라고. 고배를 마시고 있다면 더 묵혀야 할 야심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충분히 발효되면 제 맛을 볼 시기가 곧 다가올 것이라고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날은 금방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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