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살릴 혁신 성장전략은?

한국경제가 패러다임 전환의 기로에 섰다. 저성장 구조와 맞물린 일자리 부족이 가속화되면서 새로운 성장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선진국의 경험을 모방하거나 재빨리 추격해 산업화에 성공한 성장모델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해 신흥개도국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이런 배경에서 국정운영의 핵심으로 제시된 ‘창조경제’는 그 정의를 둘러싼 논쟁을 넘어 위기관리 차원에서 금융과 혁신의 두 축에 집중되어야 할 듯싶다.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들이 발권력을 동원해 무제한적 통화정책을 쓰는 동안 풀린 돈의 마지막 피해는 한국과 같은 수출주도형 신흥국가들이 입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주기가 더욱 빨라지면서 상시적인 위기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창조경제 정의에 매달려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 창조경제란 ‘창조적 혁신경제’를 줄인 말로 이해하면 충분하며, 그 수단은 다름 아닌 혁신이다. 새로운 분야나 산업 창출이 최선이겠지만, 기존 제조업에도 디지털 옷을 입히거나 지식을 적용해 가치를 높이는 과정이 바로 혁신이다. 금융, 교육, 의료, 통신, 법률, 유통, 문화, 관광 등 서비스산업 역시 모바일 시대에 가치혁신 중심 분야로 잠재적인 성장동력이다.

삼성-애플 특허전쟁 와중에도 거래

하지만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인 기업의 혁신활동을 지원하고 장려해야 할 정책과 제도가 안타깝게도 현장 상황과 기대감을 반영하지 못한다. 규제의 덫에 발목 잡혀 글로벌 경기장에 출전하기조차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정책전문가와 공무원들이 나름대로 고민해 내놓는 시책과 전략이 또 다른 규제를 낳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헬스케어 산업에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뜨고 있는 의료용 앱이 제조업과 서비스업 사이에서 해당 관청의 대응이 늦어지면서 최근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자칫 새로운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혁신 속도가 늦어지고 시장 출시가 지연되면 경제사회적 편익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최근 정보통신(ICT)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글로벌 시장은 치열한 격전장임에 틀림없다. 과거의 적과 동지 구분 없이 진행되는 미래시장 헤게모니 쟁탈전은 예측이 쉽지 않다. 그 한 예로 지난 9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세계 2위 휴대폰 업체였던 핀란드의 간판기업 노키아 휴대폰사업 부문을 72억 달러에 인수했다. 지금까지 애플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하드웨어인 단말기만 만들고 구글이나 MS의 소프트웨어를 제품에 담아 출시해왔다. 하지만 MS는 ‘SW 루저와 HW 루저의 결합‘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이번 인수를 통해 소프트웨어에 하드웨어를 결합해 모바일 시장에서 삼성, 애플, 구글 등과 진검승부를 불사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또 다른 예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양대 강자인 삼성과 애플의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대회전이다. 절대강자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디지털 기업들의 생존경쟁을 꾸밈없이 보여준 이 특허전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지식재산권 분쟁에서는 일반적으로 판정 결과가 손해배상일 경우 과거 침해행위에 대한 금전적 배상을 한 뒤 계속해서 영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특허침해금지청구권제소에서 해당특허 침해가 인정될 경우 패소자는 미래의 영업 자체가 중단되고 시장에서 퇴출되므로 파급효과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삼성-애플 분쟁의 항소심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동종업계 기업 제휴는 산업적 이해관계를 넘어 법률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전략적 제휴가 형성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개방형 혁신 확산과 기업 간 전략적 제휴, 지식재산권 분쟁 등에 대해 창조경제 관점에서 치밀한 대응전략이 요구된다. 분쟁 중에도 여전히 삼성은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고, 애플은 구매자 입장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음은 전략의 최전선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대전을 계기로 기술경영과 법률경영이 결합되어야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가치창출 생태계 구축하려면

산업화를 이끈 한강의 기적은 질 높은 노동력과 ‘캔두(Can Do)’ 정신으로 일궈낸 한민족의 근대 신화다. 이제 창조경제를 통해 제2의 신화를 이루려면 반드시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창의적 아이디어를 지식재산으로 변환하고 이를 제품과 서비스에 활용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혁신을 산업과 경제의 핵심동력으로 삼는 것이 바로 창조경제의 골격이다. 무엇보다 흩어져 있는 사람과 지식의 가치를 엮어내는 ‘가치사슬혁신’이 원활하게 일어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래사회 트렌드를 비롯해 국민과 사회의 기대를 읽어내고 시장수요를 전망한 뒤 연구개발과 생산활동을 통해 성과로 결집시키는 것이다.

둘째, 융합과 혁신은 자율과 자생적 창의력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진화의 결과이므로 정부의 개입과 주도에 한계가 있다. 신뢰와 도전정신이 변화와 혁신, 기업가 정신의 근본이 되어야 비로소 벤처 생태계가 조성된다. <논어>에 나라 다스리기의 근본으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나온다. 정부와 혁신의 주체들 사이에 신뢰를 쌓지 못하면 아무리 연구비가 풍족하고(足食) 연구인력을 많이 양성해내더라도(足兵) 기술혁신은 성공하지 못함을 일깨워준다. 정부부처 사이에도 융합과 협업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정부가 ‘신공무정신’으로 무장해 할거주의와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자는 뜻이다.

셋째, 지식 창출에서 창업에 이르는 혁신과정과 연구개발자원 배분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새로운 생산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술이전과 사업화 조직을 생산적으로 통합하는 일도 여기 포함된다. 벤처캐피탈 기능을 뛰어넘는 위험감수형 펀드로 ‘창조혁신기금’ 등을 설치하되 정부의 감사가 보다 유연해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아울러 기존 전략과 정책이 효력을 내지 못하면 근원을 찾아내 신속히 수정·보완해 새롭게 변환하는 이른바 ‘작비금시(昨非今是)’의 유연한 대응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혁신이 지향하는 목표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의 미래 행복을 위한 지식의 가치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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