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 선 당신, 어떤 유언을 남길 것인가?

“김용택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김용택을 불러 놓고 유언을 하셨는데?, ‘네 어머니가 방마다 아궁이에 불 때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 부디 연탄보일러를 놓아드려라’라고 말씀하셨다. (중략) 이 유언은 건실하고 씩씩하고 속이 꽉 차 있다.? 김용택 아버지는 참으로 죽음을 별것 아닌 것으로, 아침마다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가듯이 가볍게 받아들이셨다.”(본문 중에서) 

이틀 전 김훈 작가의 ‘죽음에 대한 관조’를 소개하면서 여러 생각이 오갔다. 필자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갖 풍상 다 겪었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나이다. 한편 ‘이만하면 한 생, 잘 살다 가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든다.

요즘 들어 평생 함께해온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죽음을 관조하게 된다. 전편에 이어 김훈 작가의 ‘죽음의 고찰’이라는 글을 마저 소개한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 ‘광야를 달리는 말(!)’을 자칭했다.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돌면서 평생을 사셨는데,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미안허다’를 남기셨다. 한 생애가 네 음절로 선명히 요약되었다.

더 이상 짧을 수는 없었다. 후회와 반성의 진정성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것은 좋은 유언이 아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었고, 대책 없이 슬프고 허허로워서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퇴계 선생님은 죽음이 임박하자? “조화(造化)를 따라서 사라짐이여, 다시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라는 시문을 남겼고, 임종의 자리에서는 “매화에 물 줘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제자들이 기록했다.? 아름답고 격조 높은 유언이지만 생활의 구체성이 모자란다.

내 친구 김용택 시인의 아버지는 섬진강 상류의 산골 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 김용택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김용택을 불러 놓고 유언을 하셨는데?, “네 어머니가 방마다 아궁이에 불 때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 부디 연탄보일러를 놓아드려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김용택의 어머니 박덕성 여사님한테서 직접 들었다. 몇 년 후에 김용택의 시골집에 가봤더니 그때까지도 연탄보일러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퇴계 선생님, 김용택의 아버지, 이 세 분의 유언 중에서 나는 김용택 아버지의 유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유언은 건실하고 씩씩하고 속이 꽉 차 있다.? 김용택 아버지는 참으로 죽음을 별것 아닌 것으로, 아침마다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가듯이 가볍게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인생 당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정도 유언이 나오려면, 깊은 내공과 오래고 성실한 노동의 세월이 필요하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죽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의술의 목표라면 의술은 백전백패한다.

의술의 목표는 생명이고, 죽음이 아니다.? 이국종처럼 깨어진 육체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충분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품위 있게 인도해주는 의사도 있어야 한다.? 죽음은 쓰다듬어서 맞아 들여야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다 살았으므로 가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파이프를 꽂아서 붙잡아 놓고서 못 가게 하는 의술은 무의미하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 ?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낼 수 있다.? 결국은 가볍다.?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보는, 천하를 통일하고 불로장생 살고 싶어 만리장성을 쌓았던 중국의 진시황제나? <로마의 휴일>에 공주 역으로 데뷔하여 오스카상을 탄 아름답고 청순한 이미지의 오드리 햅번, 권투 역사상 가장 성공하고 가장 유명한 흑인 권투선수 겸 인권운동가 무하마드 알리, 연봉을 단 1달러로 정하고 애플을 창시하여 억만장자가 된 스티브 잡스,? 철권통치로 영원히 북한을 통치할 것 같았던 김일성,? 그들은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재산이 13조로 가만 있어도 매달 무려 3천억원의 돈이 불어나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병상에 누워있다가 결국 고인이 됐다.

이렇게 화려하게 살다가 떠나간 사람 중 누가 부러운가?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고, 또 카톡도 즐기며 이렇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세상에는 없는 게 3가지가 있다. ①정답이 없다. ②비밀이 없다. ③공짜가 없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것 3가지가 있다. ①사람은 분명히 죽는다. ②나 혼자서 죽는다. ③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또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 3가지가 있다. ①언제 죽을지 모른다. ②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③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태어나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지만, 죽는 방법은 천차만별하다. 그래서 인간의 평가는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 것으로 결정된다.

내가 세상에 올 땐 나는 울었고,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은 웃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땐, 사람들이 아쉬워 우는 가운데, 나는 웃으며 홀홀히 떠나가자.>

여든이 지난 나는 미구에 닥칠 죽음을 이따금 떠올려 본다. 김훈 작가의 글을 두번에 걸쳐 옮기는 것은 각자에게 닥칠 죽음에 미리 대비하자는 뜻도 있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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