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은 인류공통의 소통 언어
아랍권 애니메이션 선구자, 이집트 ‘모하메드 가잘라’
인류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일까. 클레오파트라? 아니다. 그보다 앞선 절세 미인이 있다.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18왕조 왕비 네페르티티(Nefertiti)다. 애니메이션 작가 모하메드 가잘라(Mohamed Ghazala·35)는 네페르티티의 고장 이집트 미니아(Minya)에서 왔다. 제1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7월23~28일)에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그를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행사장에서 만났다.
가잘라는 아랍권 20여개국을 통틀어 유일하게 애니메이션 전공과정을 둔 미니아대학 교수다. 학부와 석·박사과정 모두 이 대학에서 마쳤다. 그가 건네준 명함에 네페르티티의 초상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미니아대학의 로고가 바로 ‘극상의 미색’ 네페르티티다. 가잘라 교수는 기자가 네페르티티를 알아보자 급반색했다. 인터뷰는 자연스레 거기서 시작됐다. 그는 “네페르티티는 이집트 고고학의 미해결 과제지만 유일한 흉상이 미니아 남쪽에서 발굴되는 등 이 지역이 근거지였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네페르티티’는 이집트어로 ‘아름다움이 왔다’는 뜻이라고 한다.
가잘라는 국제애니메이션협회(ASIFA) 부회장으로 2008년 ASIFA 이집트 지부를 설립한 아랍 애니메이션 업계의 젊은 기수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책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로 슈투트가르트, 카스텔리 등 세계 유수의 애니메이션 축제에 초대될 만큼 명성을 쌓았다. 그가 감독·제작한 작품 중 <호나인의 신발(Honayn’s Shoe)>은 2010년 아프리카영화제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다. <아랍세계의 애니메이션>을 쓰는 등 연구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한국방문이 처음인 그에게 애니메이션과 이집트 얘기를 들어봤다.
-경력을 보면 많은 애니메이션 행사에 출품자·심사위원으로 참가했는데, SICAF의 수준이 어떤가.
“아주 인상 깊었다. SICAF는 격년제로 열리는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이어 아시아에서 둘째로 큰 대회다. 이번에 어린이 부문 심사를 맡았는데 본선에 올라온 11개국 26개국 작품 수준이 모두 높았다. 특히 아랍권에서는 내가 처음으로 SICAF에 참여하게 돼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가는?
“작가들의 열정이 뜨겁고 창의적인 캐릭터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이번에 어린이 부문에서 수상한 이병직 감독의 <마법천자문>이 그 중 하나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아직도 일본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머잖아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장르로서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애니메이션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인류공통 언어이자 소통의 플랫폼이다. 시공과 언어, 인종, 생명을 초월해(barrier-free) 이야기를 전달하는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애니메이션은 1937년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가 나온 이래 70여년 간 셀 표출방식의 본질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내연기관 자동차 작동원리가 1세기 동안 바뀌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친숙한 표현양식이다.”
-아랍권과 아프리카에서 애니메이션이 부진한 이유는?
“아직 인식이 미흡하다. 애니메이션을 어린이 오락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경우 애니메이션 산업이 이집트와 사우디 아라비아에만 있다. 두 나라를 합쳐 스튜디오가 50개 정도 있다. 아랍권에서도 언젠가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인 문화산업으로 볼 때가 올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분석·비판을 많이 했다. 왜 디즈니가 문제인가.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을 산업으로 만들어낸 창시자이므로 당연히 연구대상이다. 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나타난 동물을 3가지 유형으로 분석했다. 첫째 순수한 동물, 둘째 라이온 킹 같은 말하는 동물, 셋째 도널드 덕처럼 옷을 입고 인간화된 동물이 그것이다. 이렇게 분석한 것은 내가 처음이다. 디즈니에 대한 비판은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캐릭터의 과장된 형태와 언행, 성격묘사에 이르기까지 디즈니 전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
-개인 웹사이트를 보니 풍경화 등 회화작품도 많이 실려있는데.
“그림은 어떤 장르건 나의 취미이자 직업, 행복, 사랑이다. 특히 풍경과 동물을 파스텔로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을 통해 우리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세상에 대한 생각과 삶의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 그림은 인생의 모든 부분을 공유하고 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마지막으로 요동치고 있는 이집트 정국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혼란이다. 2011년과 이번 두 차례의 혁명 모두 이집트가 7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s)은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다. 모든 요직을 독차지하고 온갖 인권탄압을 일삼았다. 몇 년 더 견딜 수 없을 만큼 시민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그들은 축출된 무르시 대통령 지지시위에 어린이, 부녀자들을 동원하고 있다. 이들의 저항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정도다. 평화적으로 통제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직선 대통령을 군부가 축출한 것은 나쁜 선례라는 게 국제사회의 시각인데.
“이집트에서 군의 힘이 강력한 것은 어김없는 현실이다. 이집트 경제의 40%를 군이 차지하고 있다.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번에 군이 나서지 않았다면 내전 상태로 돌입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순응적 자세에서 깨어나 바뀌고 자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6개월 후 다시 치를 선거에서 그 힘이 나타날 것이다. 나는 이런 과정과 이집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