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2일] 한-베트남 수교(1992년)

2001년 아프카니스탄 하미드 카르자이 권력 승계

2001년 12월22일 아프카니스탄 북부동맹의 지도자 부르하누딘 랍바니(Burhanuddin Rabbani)가 과도정부 수반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에게 권력을 넘겨줬다.

하미드 카르자이는 칸다하르 태생으로 파슈툰족의 포팔자이파 두라니 부족 출신이다. 두라니 부족은 18세기 중반부터 1973년 자히르 샤 전 국왕 축출 때까지 아프간을 통치한 왕족이 속한 부족으로, 카르자이는 1999년 부친의 피살 이후 부족장이 됐다.

인도의 대학에서 정치과학을 학습하고 대소련항쟁기에는 무자헤딘에게 자금을 댔다. 1992년 들어선 랍바니 정권에서 외무장관을 역임했었다. 애초 탈레반의 우호적 지지자로서 유엔주재 대사직을 제의받기도 했지만, 파키스탄과의 커넥션을 이유로 탈레반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이후 인도 캘커타에 머물면서 자히르 샤 왕조의 복위를 꾀하던 그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이 닥치자 북부동맹의 일원이 됐다. 2002년의 부족대표회의를 거쳐 그는 과도정부의 수반으로 선출됐다. 사실상의 특별한 권력 기반이 없음에도 군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해외 원조를 받아내 오는 등의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고, 이러한 점이 미국의 지지를 받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2001 日王, “한반도와 혈연관계”

2001년 12월22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續)일본기’에 기록돼 있는 사실에 한국과의 연(緣)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왕 자신이 공개적으로 한반도와의 혈연적 관련성을 언급한 첫 사례다.

당시 불편한 한일관계를?호전시켜 보려는 취지에서 양국우호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분석됐다. 학계에서는 이미 양국 간 역사적 맥락이 정설로 돼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지난 2011년 12월21일에는 제100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렸다.

1994 伊 베를루스코니 총리 1차 사임

전진이탈리아당(FI)·국민연합(AN)·북부리그(LN) 등 연정을 구성해 전후 최초의 우파연정을 출범시키면서 총리에 올랐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1994년 12월22일 연정 붕괴로 7개월 만에 물러났다. 그 뒤 세 차례에 걸쳐 총리에 오른 그는 17년간 이탈리아 정치권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그가 지난 11월12일 또 사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집권 총리다. 집권 기간 53차례에 걸친 불신임투표를 딛고 정권을 유지했다.? 그는? ‘부정부패 정치인’이란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23건에 이르는 검찰조사, 경제위기 방치, 미성년 성매매 의혹 등은 여당조차 두 손을 들게 만들었다. 최근 이탈리아의 경제 위기가 퇴진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재산은 세계에서 열손가락 안에 들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960년대부터 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돈세탁·탈세 및 세무공무원 매수, 뇌물수수, 불법 정치자금 운영, 탈세, 마피아 지원 등의 혐의다. 1998년에는 징역 2년9개월형을 받은 적이 있다.

1993 남아공의회 신헌법안 승인…백인지배체제 종지부

1993년 12월22일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의회는?새 헌법안을 압도적(찬성 237, 반대 45)으로 승인했다. 300년 넘게 지속돼온 남아공의 백인지배체제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남아공 정부와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간의 2년여에?협상 끝에 마련된 새 헌법안은 흑인들에 대해 투표권과 공직취임 등 백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아공은 흑백 과도행정위원회의 감독기간을 거쳐 이듬해 4월 다인종 총선을 실시, 실질적인 흑인집권의 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항해 인권운동에 투신, 27년간 복역했던 넬슨 만델라 당시 ANC의장은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선출됐다.


1992 한-베트남 수교

1975년 통일 베트남 출범 이후 한국 베트남?양국은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1992년 12월22일 대사급 수교관계를 맺었다. 사회주의 국가로,?1986년부터 ‘도이모이(개혁)’를 통해 개혁·개방의 길로 접어든 말 그대로 ‘발상의 대전환’이 양국의 수교로 이어진 것이다. 베트남인들의 자부심은 한국과의 구원(舊怨)을 문제 삼지 않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과거를 묻고)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협력하자”고 말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 호찌민 묘소를 참배하면서 “마음의 빚”을 거론했다. 2009년 10월22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