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가치 하락…미국·북한발 ‘변수’ 가능성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22일 오전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신조 총리(왼쪽부터),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답변하고 있다. <사진=교도/연합뉴스>

달러당 100엔 턱밑까지 임박한 엔·달러 환율 상승세(엔화 가치 하락)가 언제, 어느 선까지 지속될지 관심을 모은다.

최근 엔화 가치 하락은 길게 보면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정책)’, 짧게 보면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 체제로 새 출발한 일본은행의 과감한 금융완화 결정이 유도한 것이다.

현재의 엔저 흐름은 작년 11월 중순 민주당 정권의 국회 해산 선언을 계기로 시작됐다. ‘과감한 금융 완화’를 내세운 아베 정권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자 시장의 기대 심리가 발동되면서 엔저 흐름이 형성됐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2% 물가 상승 목표’ 협정이 불씨를 제공했다.

막연하던 기대 심리를 뛰어넘은 ‘현실’이 바로 구로다 총재가 주도한 금융완화 결정이었다.

지난 3∼4일 구로다 취임 이후 처음 열린 금융정책 결정회의에서 일본은행은 2년간 자금공급량을 2배로 늘리기로 했다. 작년 말 기준 138조 엔이던 본원통화 규모를 연간 60조∼70조 엔가량 늘려 내년 말 270조 엔까지 확충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장기국채, 상장지수펀드(ETF)와 부동산투자신탁(J-REIT) 등 기존에 위험성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사지 않았던 이른바 위험자산의 구입액을 배증키로 했다.

3일 달러당 93.43엔(도쿄 종가)이던 엔화 환율은 이 같은 발표가 있은 당일 95.61엔(도쿄 종가)으로 치솟았다. 이어 8일 일본은행이 첫번째 조치로 장기국채 1조2000억엔 상당의 매입을 시작한 이후 달러당 엔화는 99엔대에 진입, 100엔 돌파를 목전에 뒀다. 그 후 15일 보스턴 마라톤 테러 등 미국발 악재 속에 잠시 하락세를 보였지만 18∼19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가 엔·달러 환율을 한층 끌어올리는 새 동력을 제공했다.

회의의 결과물인 공동성명이 일본의 금융완화가 엔저 목적이 아닌 디플레이션 탈출 목적이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일본의 ‘파격적 돈풀기’가 사실상 국제사회로부터 ‘그린카드’를 발급받았다는 인식이 시장에 확산된 것이다.

엔저 흐름은 한동안 유지될 공산이 커 보인다.

지난 11일 보도된 니혼게이자이 신문(닛케이)의 자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연내에 달러당 105∼107엔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점친 이가 외환시장 관계자 10명 가운데 6명에 이르렀다.

또 108.5∼112엔대를 예상한 사람이 3명, 103엔을 예상한 사람이 1명이었다.

여기에 더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 등 일본 정부 수뇌부는 현재의 엔저 기조에 당분간 인위적 조정을 가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최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금융완화 조치 이후 달러당 100엔대 근처까지 치고 올라갈 때의 맹렬한 속도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외부 요인이 엔화 가치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자동지출삭감(시퀘스터)에 따른 영향이 곧 경제지표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전망이다. 이미 이달 초 나온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의 3월 제조업 지수가 시장의 예상치(54)를 크게 하회한 51.3으로 나타난 바 있다.

미국의 경기둔화가 지표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움직임은 둔화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다음달쯤 일본의 엔저와 주가상승 추세가 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닛케이 설문조사에서 엔저 기조가 엔고로 돌아설 경우의 환율 전망에 대해 모든 응답이 달러당 90∼95엔 범위 안에 있었고, 80엔대까지 엔화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일본은행의 대규모 금융완화, 글로벌 금융위기의 수습국면 진입 등으로 인해 과도한 엔고 국면은 벗어났다는게 시장의 전반적인 예상인 셈이다.

북한이 흔들고 있는 동북아 안보정세가 엔저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건이다. 아직 ‘꺼지지 않은 불’인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추가 핵실험 등으로 역내 긴장이 고조됐을 때 엔화를 안전자산으로 간주하고 매입하는 움직임이 커질 수 있고, 반대로 일본 자체에 가해질 안보 위협 때문에 엔화를 매도하는 흐름이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후자일 경우 엔저 속도는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연합뉴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