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6일] 캄보디아서 UN군 철수한 날

2008년 미국의 영화배우 폴 뉴먼(Newman, Paul) 사망

2008년 9월26일(미국 현지시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명배우 폴 뉴먼(Newman, Paul)이 오랜 암 투병 끝에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83세였다.

할리우드 정상의 배우로 50년 이상 활동했던 뉴먼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고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과 베를린영화제 연기자상, 2006년 미국배우 조합상 TV영화, 미니시리즈부문 남자연기상, 2006년 제63회 골든글로브시상식 TV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와 TV를 넘나들며 맹활약을 펼쳐온 연기파 배우다.

뉴먼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컬러 오브 머니>, <스팅> 등 숱한 화제작을 남겼으며, 배우이자 아내인 조앤 우드워드와 각종 영화에 함께 출연해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1969년 영화 <위닝>을 촬영하면서 처음 접한 자동차 경주에 매력을 느껴 이후 자동차 경주광의 면모를 종종 과시했다. 말년에는 ‘뉴먼즈 오운’, ‘책임지는 부자’라는 회사와 단체를 잇따라 결성해 자선사업에 힘을 쏟았다.

사망 1년 전인 2007년 6월 공식 은퇴를 선언해 화제를 모았었다.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로버트 레드포드는 “진정한 친구 한 명을 잃었다”고 슬퍼했다.

2007년 英 과학자 “바다에 파이프 띄워 온난화 막자”

2007년 9월26일(영국 현지시간)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인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 박사팀은 “바다에 대형 파이프를 설치해 지구 온난화를 막자”고 제안해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됐다.

전 세계 바다에 플라스틱 파이프를 설치,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는 이론을 내놓은 것이다. 러브록 박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교토의정서 이행이나 재생에너지 개발 등 통상적 방법으로는 지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더 강력한 방안이 필요하다”며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봐 지구의 자기 치유력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브록 박사 등이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한 방안을 보면, 바다에 길이 100∼200m, 지름 10m의 수직 파이프를 설치하는 게 핵심이다. 이 파이프들은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바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영양분이 풍부한 심층수를 끌어올리게 된다. 이 심층수가 표층수와 섞이면, 해조류가 더 왕성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주장이다. 해조류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한편, 황화디메틸(DMS)을 배출해 햇빛을 반사하는 구름을 형성하게 된다.

미국 기업 ‘애트모션’은 이미 이와 비슷한 이론을 실험으로 옮긴 적이 있다. 애트모션은 전세계 해양에 1억3400만개의 파이프를 심으면 연간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3분의 1을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 2007년초부터 파이프로 200m 깊이의 심층수를 끌어올리는 실험을 하고 있다.

1998년 제1회 방콕국제영화제서 한국의 <꽃잎> 최고상

1998년 9월26일 열린 제1회 방콕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의 장선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꽃잎>이 최고상인 아시아영화부문 최우수 극영화상을 수상했다. 국제심사위원단은 광주민주화항쟁을 그린 영화 <꽃잎>에 대해 “상징주의 기법으로 참상 현실을 잘 포착해 정치 탄압이 사회를 통해 어떻게 반향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날 폐막된 방콕영화제에는 18개국에서 극영화 50여편과 단편, 기록영화 75편이 출품돼 9일동안 2만여 관객을 모았다.

영화 <꽃잎>의 한 장면.

1993년 캄보디아 주둔 UN군 철수

1993년 9월26일 캄보디아 주둔 UN평화유지군이 철수했다. UN평화유지군은 2년 전인 1991년 10월 당시 13년에 걸친 캄보디아 내전이 종식되자 이 나라에 파견됐었다.

평화유지군은 과도행정기구를 구성하고 각 정파의 병력감축과 질서유지 활동을 벌였다. 평화유지군은 같은 해 5월 치러진 총선으로 2개 정파가 연정을 실시하고 시아누크를 국왕으로 하는 입헌군주국이 성립되자 평화유지군이 캄보디아를 떠나게 됐다.

캄보디아에 머물렀던 유엔 평화유지군은 모두 2만2000여 명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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