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0일] 제 10회 ‘자살 예방의 날’ 맞은 착잡한 한국
2008년 한국여성 끌어들인 국제마약상 한국 압송
2008년 9월10일 한국 여성들에게 마약을 운반하게 한 나이지리아 국적 국제 마약사범 오비오하 프랭크 친두가 중국에서 국내로 압송됐다.
한국어에도 능통한 프랭크는 2002년 5월~2003년 8월 주로 20대 여성에게 접근, “영어 공부를 시켜주겠다. 해외여행을 시켜주겠다”면서 항공권과 호텔비를 주며 동남아에서 밀수한 마약의 운반책으로 활용한 혐의다.
그에게 속은 여성 10여명은 옷 샘플로 위장한 마약이 든 가방을 들고 덴마크·영국·일본·브라질 등지로 출국했다가 붙잡혀 현지 교도소에서 징역 3년~5년6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은 2002년부터 마약 운반 혐의로 외국에서 체포되는 한국인이 늘자 수사에 나서, 코카인 40㎏과 대마 282㎏을 밀거래한 혐의로 그를 수배했다. 프랭크는 2003년 10월 독일로 도피했다가 체포돼 덴마크로 넘겨졌지만 이듬해 5월 탈옥해 중국으로 달아났고, 지난해 2월 중국 공안에 다시 붙잡혔다.
9월10일은 마약과 인연이 있는 날인 것 같다. 오비오하가 한국으로 압송된 날로부터 꼭 1년전인 2007년 9월10일에는 콜롬비아의 마약왕 디에고 몬토야가 검거됐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마약 생산국인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밀반입되는 마약의 70%가 그와 조직의 손을 거칠 정도로 마약 거물 중의 거물로 통하는 디에고 몬토야. 콜롬비아 특수부대는 이날 전문 암살단을 운영하면서 1500여 명을 암살한 혐의도 받고 있는 그를 전격 체포했다. 당시 미국 연방수사국(FBI)는 몬토야를 오사마 빈 라덴과 함께 세계 10대 수배자로 지정했고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었다.
2003년 자살예방의 날
2003년 9월10일 국제자살예방협회(IASP)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세계보건기구(WHO)와 협력, 세계자살예방의 날(World Suicide Prevention Day)을 제정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인명손상원인의 하나인 자살문제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은 자살에 관한 한 가장 앞서가는 선진국이다. 우선 ‘세계자살예방의 날’이 제정된 당일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 무역 기구(WTO) 협상 반대시위 벌이던 이경해 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 할복 자살했다.
2012년 현재에도 한국은 소위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영예의 자살율 1위는 물론 각종 자살 경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인구10만 명당 연간 자살자 국제비교(Suicides per 100,000 people per year)
1973년 미군, 태국에서 철수 시작
1973년 9월10일 태국 북부 남퐁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이 철수를 시작했다. 미 공군 병력 3만5000여 명과 전투기 400여 대가 본국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베트남전이 격화되자 이웃 나라인 태국의 공산화를 막고 베트남 폭격을 지원하기 위해 타이에 파견됐었다.
2012년 현재 미군은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했던 아시아 군사기지로 돌아오고 있다. 태국의 우타파오 공군기지, 필리핀의 수비크만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 베트남의 깜라인만 해ㆍ공군기지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와도 낮은 단계의 군사 교류를 추진하고 있고, 호주와 싱가포르에는 새 기지 및 항구 이용권을 확보한 상태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하는 아시아 복귀 전략의 일환이다. 남중국해(베트남은 ‘동해’라는 명칭을 고수한다)문제로 중국과 팽팽한 긴장관계에 있는 베트남은 중국과 맞서려고 과거 적대관계였던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려 하고 있는 셈이다. 인도네시아는 중국과 군사합동훈련도 하는 처지인데, 한편으로는 미군 기지를 제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인간이 국가를 만들어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쓰는 이유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1960년 맨발의 아베베, 로마올림픽 마라톤 우승
1960년 9월10일 로마올림픽 마라톤에서 에티오피아 대표선수 아베베가 우승했다. 1932년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나 황제를 모시는 친위대 하사관으로 복무한 그는 경기 며칠 전 골절상으로 출전이 어렵게 된 선수를 대신해 이날 열린 로마올림픽 마라톤에 참가했다.
맞는 신발이 없어 평소 훈련하던 대로 맨발로 달렸다. 69명이 겨룬 이날 경주에서 아베베는 마의 2시간20분 벽을 깨고 2시간15분16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세계가 놀랐다. 아프리카 흑인 출신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고 35년 자신의 조국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의 수도 한복판에서 건져 올린 값진 금메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아베베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2번째 감동을 안겨준다. 운동화를 신고 달렸던 도쿄올림픽에서 3분이나 앞당기며 또다시 금메달을 땄기 때문. 세계 최초 올림픽 마라톤 2연패였다. 일본은 아베베가 우승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국가를 준비하지 않아 시상식장에 일본가요가 울려 퍼지는 웃지 못 할 풍경이 펼쳐졌다. 아베베는 경기 6주 전 맹장 제거 수술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구촌 사람들은 읍을 다물지 못했다.
아베베가 전해준 감동은 한 번 더 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에도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청천벽력 같은 현실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도전을 이어간 아베베의 불굴의 투지와 긍정적 사고는 훗날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남겼다.
아베베는 1969년 에티오피아 황제가 하사한 차를 몰고 가다 빗길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는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노르웨이에서 열린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 양궁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4년 뒤인 1973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6만5000명의 조문객들이 찾아 조문했다.
1721년 스웨덴-러시아 간 니슈타트 조약 체결
1721년 9월10일 니슈타트 조약이 체결, 제2차 북방전쟁 중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이 종결됐다. 제2차 북방전쟁은 16~17세기에 스웨덴이 발트 해 연안에서 영토를 늘려나가자 이웃한 러시아, 덴마크-노르웨이, 작센-폴란드 등이 이에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기회를 엿보던 각국은 1697년 스웨덴의 카를 11세가 죽고 당시 14세에 불과했던 카를 12세가 왕위에 오르자 반(反)스웨덴 동맹을 결성, 스웨덴에 맞섰다. 그러나 카를 12세의 연이은 승리로 반(反)스웨덴 동맹의 위력은 점차 약화됐다.
1709년 7월8일 전력을 재정비한 러시아 군대가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군을 무찌르자 이를 계기로 반(反)스웨덴 동맹이 다시 결집했다. 전세가 역전돼 동맹세력은 1709년 가을 발트 해 연안의 스웨덴 점유지들을 빼앗기 시작했다. 카를 12세는 재기의 기회를 노렸지만 1718년 11월 프레데릭스할트 전투에서 전사했다. 후손이 없었던 카를 1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프레드리크 1세는 1719~1721년 여러 차례의 평화협상을 추진했다. 니슈타트 조약도 이 평화협상들 중 하나였다.
이 조약에 따라 스웨덴은 잉그리아·에스토니아·리보니아 및 핀란드령 카렐리아의 일부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했다. 그 결과 발트 해 지역에서 스웨덴의 영향력이 약화됐으며, 러시아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