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7일] 인도 시인 타고르 영면에 들다

2009년 태풍 ‘모라꼿’에 대만·중국 대형 참사

2009년 8월7일부터 8일까지 그 해 제8호 태풍 모라꼿(태국어로 ‘에메랄드’)이 대만과 중국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 모라꼿은 7~8일 대만을 통과해 9일 중국 남부 푸젠(福建)성에 상륙, 중국 본토에서 열대성 저기압으로 변해 세력이 약해졌지만 많은 비를 뿌렸다.

8월8일 자정께 태풍 모라꼿이 타이완 섬에 상륙한 후에 타이완 섬 남부 거의 모든 곳에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타이완 섬 극남부에 위치한 핑둥 현에서는 총 강수량이 2600mm가 넘어 단일 태풍에 따른 최다강수량(타이완) 부문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타이완 섬을 오고가는 극소수의 항공편은 운항됐으나, 항구들은 폐쇄되었다. 또 모라꼿으로 약 2만5000 가구가 정전으로 고통을 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타이완 섬 남부에서 적어도 약 600명이 실종됐는데 실종자 대부분은 샤오린(小林) 지역에서 실종됐다. 샤오린 지역에서는 산사태가 마을 전체를 뒤덮어 마을주민 118명이 숨졌다. 마을에 있던 집 2채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산사태로 매몰됐다. 다른 지역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막혀버렸고 이에 따라 생존자들은 4일 동안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역에서 고립된 채 물과 식량이 바닥났고 정전까지 된 상태에서 구조만을 기다렸다.

8월11일 생존자 구조용 헬리콥터가 산과 충돌해 3명의 구조자가 숨졌다. 주민 600명은 당시 생매장되었으나 그 밖의 주민 150명은 산사태가 끝난 후에 안전하게 대피했다. 2011년 1월15일에 약 150명의 생존자들을 위해 120채의 집을 새로 지었다.

타이난 현에서는 근처 저수지가 오염되면서 28만명에게 물의 공급이 중단됐다. 8월13일까지 타이완 섬 전체에서 107명의 사망자, 농업 손실액 2억7400만 달러, 관광분야 2440만 달러의 피해액이 났다.

중국 본토에서는 폭우 피해가 컸다. 4일동안 태풍 모라꼿은 중국 동부에 위치한 저장 성에 1240mm의 비를 뿌렸고, 이는 저장 성에서 60년 만에 맞은 폭우였다. 쓰촨 성 쑤이닝 시에 있는 펑시 현에서는 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3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졌다. 원저우 시에서는 대규모 산사태가 6채의 아파트를 붕괴시켰다. 모라꼿이 상륙한 지점이었던 푸젠 성 닝더 시 샤푸 현에서는 13만6000명의 사람들이 피해를 신고했다. 어업분야의 2900만 달러의 손실액이 집계됐다. 저장 성 전역에서 약 340만 명의 재산피해가 접수됐다. 1만 가구의 집이 완파 또는 반파됐고, 4000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농지가 홍수로 물에 잠겼다. 중국 전체적으로는 인명 피해 1100만 명, 재산피해는 14억 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일본도 피해를 입었다. 8월6일에 태풍 모라꼿은 풍속 105km/h의 세력으로 오키나와 섬 본토를 강타했으며 이에 따라 항공교통이 단절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고립됐다. 나하 공항에서는 80km/h 풍송의 바람으로 공항 전체가 잠시 폐쇄됐다. 국내선과 국제선 총 252편이 결항됐고 4만1648명의 승객들이 섬에 고립되었다.

필리핀에서는 8월6일 오후 4시쯤 11개 마을에서 냇가가 범람해 마을 대부분이 1.2~1.5m까지 차오른 빗물에 완전히 잠겼다. 필리핀 군인과 경찰관들은 구조팀을 결성, 3명의 한국인과 9명의 캐나다인을 구조해냈다. 약 2만9000명이 모라꼿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총 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3명의 프랑스 관광객들과 2명의 필리핀 관광가이드들이 산사태로 사망했고, 12명의 광부들이 산에 매몰되어 실종됐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각자 집의 지붕에 올라가거나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헬리콥터 구조를 애타게 기다렸다. 되었다. 모라꼿으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학교는 전부 휴교에 들어갔고 고속도로도 불능상태에 빠졌다.

Typhoon Morakot batters Taiwan – 7 Aug 09 by aljazeeraenglish


1998년 탄자니아 미대사관서 대규모 폭탄 테러

1998년 8월7일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안팎에서 연쇄폭탄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최초 폭발음은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중심가에 있는 미국대사관 부근에서 발생했다. 5분 뒤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람에서는 미 대사관 내 주차장에서 차량에 설치돼 있던 폭탄이 터져 대사관 건물 3분의 2가 무너졌다. 2건의 폭탄테러로 220여 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부상했다.

아랍 과격 무장단체 ‘지하드’가 이번 테러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이번 폭탄테러는 지난 1983년 10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미군 기지에서 자살폭탄테러로 미군 241명이 사망한 이래 미 대사관이 겪은 최악의 테러로 기록됐다.

1983년 중국 공군 조종사 미그기 몰고 한국으로 귀순

1983년 8월7일 오후 중국시험비행단 소속 손천근 조종사가 미그21기를 개량한 섬(殲)7 전투기를 몰고 한국 영공으로 집입, 초계 비행중이던 남한 공군기의 유도로 중부지역의 한 공군비행장에 착륙했다. 손 씨는 중국 다롄 상공에서 훈련을 하던 중 편대를 이탈, 마하 2.1의 속도로 서해안 영공으로 진입한 뒤 귀순의 뜻을 표시했다. 착륙하자마자 제3국 망명을 요청한 것.

한국은 당시 경계경보에 이어 휴전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공습경보를 발령했다. 미그21기 귀순 역시 처음이었다. 한국 정부는 같은 달 24일 손씨를 타이완으로 보냈다. 중국이 조종사와 기체의 송환을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는 조종사의 뜻을 존중, 조종사만 대만으로 보냈다.

미그21기를 변형해 만든 중국인민해방군의 전투기 섬(殲)7호.

 

1941년 인도의 문호 타고르 별세

동아일보에 실린 타고르와 그의 시 관련 기사

1941년 8월7일 인도의 문호 타고르가 4년여 투병 끝에 80세로 생을 마감했다.

타고르는 자신의 시에서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별칭을 비폭력 투쟁을 펼치던 인도 정치지도자 간디에게 선사한 시인이다.

1861년 인도 콜카타에서 종교개혁가인 데벤드라나트 타고르의 14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타고르는 벵골어 서정시집 <기탄잘리(신에게 바치는 송가)>의 영역본으로 1913년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지만 1919년 영국이 <인도 탄압법>에 반대하는 군중을 무력 진압한 암리차르 대학살 이후 작위를 반납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시들도 즐겨 썼는데, 아내와 자식을 잃고 나서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졌다.

타고르 사후 6년이 지난 1947년 8월15일 인도는 영국에서 독립했다. 우연인지 1919년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한국의 3?1독립만세운동, 1945년 8월15일 한국 독립과 날짜가 겹친다.

타고르가 시를 쓰고 곡조를 붙인 노래들이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국가로 각각 불리고 있다.

타고르는 또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에서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고 표현, 일제 식민치하에서 신음하던 한국 민중을 격려했다. <기탄잘리>의 35번째 시로 확인된 이 시는 1929년 4월 주요한의 번역으로 동아일보에 실려 한국인들에게 소개됐다.

경향신문은 그러나 “억압받던 인도인들을 위해 쓴 시인 만큼 원문에는 ‘코리아’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지난 2010년 8월6일치 기사에서 보도했다. 또 “타고르가 자신의 옛 시를 선물한 것인지, 국내에 사실관계가 잘못 알려진 것인지 이제 와서 규명하기는 어려울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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